11편 배달 속 악순환의 고리
새벽 배송에 숨은 다양한 노동
우리가 체감하지 못하는 고통
쉬지 못하는 노동 강박 속 사람들
새벽배송 사라지면 삶 달라질까
바나나 한 송이를 새벽에 배송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새벽에 바나나를 배송해야 할 노동자 한명 때문에 수많은 노동이 발생하고 또 얽힐 것이다. 복잡하고 유기적으로 이어진 노동의 다양성을 우리가 체감하지 못할 뿐이다. 이번 ‘노동의 표정’에선 개처럼 뛰고 있는 노동자들, 그 사이 사이에 숨은 노동자의 애환을 살펴봤다.
노동은 또다른 노동들과 얽히고설켜 있다.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개처럼 뛰고 있긴 해요” 이 목소리는 고故 정슬기씨의 마지막 카톡 메시지다. 대체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기에 이런 말을 했던 것일까. 배달 플랫폼 노동자였던 그는 이 말을 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쓰러졌고, 두번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를 남긴 채, 영원히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 된 것이다.
개처럼 일한다는 건 일이 힘들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지 모른다. 정해진 시간에 해야만 하는 일을 무조건 끝마쳐야 하는 책임도 섞여 있다. 그러니 앞서지도 물러서지도 못하는 고립된 상황에서 노동자는 멈추지 않고 뛰어야만 했다. 그에게 이 방식만이 유일한 탈출구였다.
누군가는 어떤 일이든 일을 그만두면 될 것 아니냐고 말할 수 있다.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그만둘 수 있는 자유 역시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일을 그만뒀을 때, 곁에 있는 사람이 나의 빈자리를 채워줄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나 가능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에게는 그런 여유도 능력도 없었다. 그래서 무작정 개처럼 달려야만 했다.
‘노동건강연대’에 따르면 2024년 10월 78명이 산재 노동자로 사망했다. 나는 이들의 이름도 어떤 일을 하는지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먹고살기 위해 일하다가 목숨을 잃은 사연을 듣고 있자니 너무나도 안타깝다.
무엇보다도 이들의 아픔을 어찌 다 이해하고 느낄 수 있겠는가. 쉽지 않다. 게다가 이런 풍경이 나와 무관할지라도 타인의 일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건 우리 역시 특정한 회사나 무리에 속해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먹고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방식이든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 회사에서 사고가 났을 때, 해고당할까 봐 피해자인 동료의 편을 마음 편히 들어주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어쩔 수 없는 심정을 어떻게 해서든지 함께 공유해야 한다.
그 방식이 온전한 이해와 공감은 아닐지라도 그들의 마음에 닿기 위해 애써야 한다. 우리 모두 이 작은 땅에서 서로 연결된 채 먹고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고민을 하다가 흑석동에 있는 청맥살롱에서 정진호의 그림책 「바나나가 더 일찍 오려면(사계절·2024년)」을 만났다.
이 텍스트는 어린이집 교사로 일하는 ‘민주’씨가 바나나 한 송이를 배달앱을 통해 새벽 배송 받을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담았다. 그러니까 민주씨에게 바나나가 일찍 도착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상세하게 풀어놓았다.
[사진 | 뉴시스]
간략하게 기술하면 다음과 같다. 바나나가 일찍 도착하려면 택배 기사는 새벽에 출근하거나 야근을 해야 한다. 택배 기사가 일찍 출근하려면 주유소 역시 일찍 열려 있어야 한다.
그러니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도 야근하거나 새벽 출근을 해야 한다. 주유소 직원이 주유소까지 무사히 도착하려면 새벽 일찍 지하철을 타야 한다. 주유소 직원이 걱정 없이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는 철도 노동자가 늦은 밤 철로 정비를 해야 한다.
철로 정비가 끝난 노동자는 아침밥을 먹어야 하고 이 밥을 짓기 위해 식당 주인은 아침 일찍 일어나 장을 보거나 그 전날에 재료를 준비해야 한다. 이 재료를 신선하게 전달하기 위해 생선가게 주인은 부지런하게 가게에 진열해야 하고, 어부는 생선을 가게에 제공하기 위해 컴컴한 바다를 매일 누벼야 한다.
그곳에서 어부들은 밤바다를 환하게 밝히기 위해 전구 빛을 사용하고, 이 빛을 밝히기 위해 발전소 직원은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해야 한다. 택배기사, 주유소 직원, 지하철 직원, 철로 정비사, 식당 주인, 생선가게 주인, 어부, 발전소 직원 등은 이렇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노동 현장에서 최선을 다한다. 어떤 노동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택배 기사가 새벽 배송을 하기 위해 엮이는 노동은 이렇게 다양하다.
그렇다면 민주씨가 바나나 한 송이를 새벽 배송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원장에게서 새벽에 출근해 줄 수 있느냐는 전화를 받았기 때문이다. 한 학부모가 새벽 일찍 출근하기 위해 아이를 맡겼고, 이 아이를 돌보기 위해 원장은 직원인 민주씨에게 새벽에 나와줄 수 있느냐고 물었던 것이다.
민주씨의 처지에서는 월급을 주는 원장의 전화이니 거절하기 쉽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그래서 민주씨는 끼니를 때우기로 마음먹고 새벽 배송으로 바나나를 주문한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노동이 순환하는 과정을 살펴보면서 복잡하고 유기적으로 이어진 ‘노동’의 다양한 측면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새벽 배송의 이로운 점도 있겠지만, 새벽 배송으로 인해 잃어야만 하는 여러 흔적들도 고민하게 된다.
지금 이 세상은 온전하게 흘러가는 것일까. 배달업체의 새벽 배송제도를 멈추면 조금은 더 나은 세상이 펼쳐질까. 새벽 배송이 없어진다면 민주씨의 삶은 조금 팍팍해지는 것은 아닐까. 그녀에겐 시장에서 장을 보거나 마트에 가서 물건을 고를 시간이 없을 수도 있다.
나아가 요즘 시대는 시장이나 마트에서 장을 보는 것 역시 여유 있는 사람들이 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정말로 여유가 없는 것인지, 이 세상이 개인을 계속해서 강박적으로 몰아붙이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지만, 우리는 현재 이런 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새벽 배송은 계속 이뤄져야 하는가. 멈춰야 하는가. 이미 새벽 배송의 이로움을 경험한 사람들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우리가 이런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면 어떤 방식이든지 조금은 더 나은 세상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정진호의 그림책 「바나나가 더 일찍 오려면」은 페이지 수가 적고 섬세한 결이 조금은 생략된 면이 없지 않지만, 독자들에게 여러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 준다.
무엇보다도 나의 노동이 단순히 한명의 노동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곁에 있는 사람은 물론, 익명의 다수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우리에게 노동은 무엇일까. 우리는 왜 쉬지 못하고 강박적으로 일해야만 하는 것일까. 그것이 인정 욕망이든 돈벌이든 잠시 멈춰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
바나나 한 송이를 새벽 배송으로 주문한다는 것 [노동의 표정]
11편 배달 속 악순환의 고리
새벽 배송에 숨은 다양한 노동
우리가 체감하지 못하는 고통
쉬지 못하는 노동 강박 속 사람들
새벽배송 사라지면 삶 달라질까
바나나 한 송이를 새벽에 배송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새벽에 바나나를 배송해야 할 노동자 한명 때문에 수많은 노동이 발생하고 또 얽힐 것이다. 복잡하고 유기적으로 이어진 노동의 다양성을 우리가 체감하지 못할 뿐이다. 이번 ‘노동의 표정’에선 개처럼 뛰고 있는 노동자들, 그 사이 사이에 숨은 노동자의 애환을 살펴봤다.
“개처럼 뛰고 있긴 해요” 이 목소리는 고故 정슬기씨의 마지막 카톡 메시지다. 대체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기에 이런 말을 했던 것일까. 배달 플랫폼 노동자였던 그는 이 말을 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쓰러졌고, 두번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를 남긴 채, 영원히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 된 것이다.
개처럼 일한다는 건 일이 힘들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지 모른다. 정해진 시간에 해야만 하는 일을 무조건 끝마쳐야 하는 책임도 섞여 있다. 그러니 앞서지도 물러서지도 못하는 고립된 상황에서 노동자는 멈추지 않고 뛰어야만 했다. 그에게 이 방식만이 유일한 탈출구였다.
누군가는 어떤 일이든 일을 그만두면 될 것 아니냐고 말할 수 있다.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그만둘 수 있는 자유 역시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일을 그만뒀을 때, 곁에 있는 사람이 나의 빈자리를 채워줄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나 가능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에게는 그런 여유도 능력도 없었다. 그래서 무작정 개처럼 달려야만 했다.
‘노동건강연대’에 따르면 2024년 10월 78명이 산재 노동자로 사망했다. 나는 이들의 이름도 어떤 일을 하는지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먹고살기 위해 일하다가 목숨을 잃은 사연을 듣고 있자니 너무나도 안타깝다.
무엇보다도 이들의 아픔을 어찌 다 이해하고 느낄 수 있겠는가. 쉽지 않다. 게다가 이런 풍경이 나와 무관할지라도 타인의 일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건 우리 역시 특정한 회사나 무리에 속해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먹고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방식이든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 회사에서 사고가 났을 때, 해고당할까 봐 피해자인 동료의 편을 마음 편히 들어주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어쩔 수 없는 심정을 어떻게 해서든지 함께 공유해야 한다.
그 방식이 온전한 이해와 공감은 아닐지라도 그들의 마음에 닿기 위해 애써야 한다. 우리 모두 이 작은 땅에서 서로 연결된 채 먹고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고민을 하다가 흑석동에 있는 청맥살롱에서 정진호의 그림책 「바나나가 더 일찍 오려면(사계절·2024년)」을 만났다.
이 텍스트는 어린이집 교사로 일하는 ‘민주’씨가 바나나 한 송이를 배달앱을 통해 새벽 배송 받을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담았다. 그러니까 민주씨에게 바나나가 일찍 도착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상세하게 풀어놓았다.
간략하게 기술하면 다음과 같다. 바나나가 일찍 도착하려면 택배 기사는 새벽에 출근하거나 야근을 해야 한다. 택배 기사가 일찍 출근하려면 주유소 역시 일찍 열려 있어야 한다.
그러니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도 야근하거나 새벽 출근을 해야 한다. 주유소 직원이 주유소까지 무사히 도착하려면 새벽 일찍 지하철을 타야 한다. 주유소 직원이 걱정 없이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는 철도 노동자가 늦은 밤 철로 정비를 해야 한다.
철로 정비가 끝난 노동자는 아침밥을 먹어야 하고 이 밥을 짓기 위해 식당 주인은 아침 일찍 일어나 장을 보거나 그 전날에 재료를 준비해야 한다. 이 재료를 신선하게 전달하기 위해 생선가게 주인은 부지런하게 가게에 진열해야 하고, 어부는 생선을 가게에 제공하기 위해 컴컴한 바다를 매일 누벼야 한다.
그곳에서 어부들은 밤바다를 환하게 밝히기 위해 전구 빛을 사용하고, 이 빛을 밝히기 위해 발전소 직원은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해야 한다. 택배기사, 주유소 직원, 지하철 직원, 철로 정비사, 식당 주인, 생선가게 주인, 어부, 발전소 직원 등은 이렇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노동 현장에서 최선을 다한다. 어떤 노동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택배 기사가 새벽 배송을 하기 위해 엮이는 노동은 이렇게 다양하다.
그렇다면 민주씨가 바나나 한 송이를 새벽 배송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원장에게서 새벽에 출근해 줄 수 있느냐는 전화를 받았기 때문이다. 한 학부모가 새벽 일찍 출근하기 위해 아이를 맡겼고, 이 아이를 돌보기 위해 원장은 직원인 민주씨에게 새벽에 나와줄 수 있느냐고 물었던 것이다.
민주씨의 처지에서는 월급을 주는 원장의 전화이니 거절하기 쉽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그래서 민주씨는 끼니를 때우기로 마음먹고 새벽 배송으로 바나나를 주문한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노동이 순환하는 과정을 살펴보면서 복잡하고 유기적으로 이어진 ‘노동’의 다양한 측면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새벽 배송의 이로운 점도 있겠지만, 새벽 배송으로 인해 잃어야만 하는 여러 흔적들도 고민하게 된다.
지금 이 세상은 온전하게 흘러가는 것일까. 배달업체의 새벽 배송제도를 멈추면 조금은 더 나은 세상이 펼쳐질까. 새벽 배송이 없어진다면 민주씨의 삶은 조금 팍팍해지는 것은 아닐까. 그녀에겐 시장에서 장을 보거나 마트에 가서 물건을 고를 시간이 없을 수도 있다.
나아가 요즘 시대는 시장이나 마트에서 장을 보는 것 역시 여유 있는 사람들이 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정말로 여유가 없는 것인지, 이 세상이 개인을 계속해서 강박적으로 몰아붙이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지만, 우리는 현재 이런 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새벽 배송은 계속 이뤄져야 하는가. 멈춰야 하는가. 이미 새벽 배송의 이로움을 경험한 사람들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우리가 이런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면 어떤 방식이든지 조금은 더 나은 세상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정진호의 그림책 「바나나가 더 일찍 오려면」은 페이지 수가 적고 섬세한 결이 조금은 생략된 면이 없지 않지만, 독자들에게 여러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 준다.
무엇보다도 나의 노동이 단순히 한명의 노동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곁에 있는 사람은 물론, 익명의 다수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우리에게 노동은 무엇일까. 우리는 왜 쉬지 못하고 강박적으로 일해야만 하는 것일까. 그것이 인정 욕망이든 돈벌이든 잠시 멈춰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