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1월 울산에 거주하는 조선소 하청업체(일명 ‘물량팀’) 소속 40대 근로자 A 씨는 조선소로 출근하던 길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에 따르면 통상적인 방법으로 출근 중 발생한 재해는 산업재해로 인정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원청기업은 A 씨를 원청 소속이 아닌 하청업체 소속 ‘단순 일용직’으로 규정해 산재 처리를 하려 했다. 일용직은 특성상 산재를 승인받기 어렵고 승인을 받더라도 휴업급여가 턱없이 적어진다. 전신 타박상과 목 부상을 입어 당분간 일을 하기 어려운 A 씨는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할 처지다. 원청회사의 산재 처리 움직임에 고민이 큰 상황이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한미 간 조선 협력 방안이 거론되며 호황기를 맞이한 조선해운업의 산재 피해자 수가 4년간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선박 건조 및 수리업 산재 피해자 수는 2020년 1151명에서 2023년 1652명으로 4년간 43.5%(501명)가 늘었다. 고용부에 따르면 지난해 조선업 산재 사망자 수는 20명으로, 최근 5년간 최고치를 기록했다.
● 사업장 내 불법 하도급 만연, 안전수칙은 뒷전
조선소 내 산업재해가 급증하는 원인으로는 사업장 내 만연한 불법 재하도급으로 안전수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 꼽힌다. 고용부는 조선업 등 산재 취약 업종을 대상으로 안전수칙 교육 및 산재 방지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진행 중이지만, 현장에서는 바쁜 건조 일정 때문에 안전은 뒷전으로 밀려난 상황이다. 조선업 현장에선 배 한 척을 만들기 위해 한 독(dock)에 수백 개의 하청업체가 모여 함께 작업을 한다. 조선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원청기업들은 안전사고 책임을 회피하고 건조 기간을 단축하려는 목적으로 ‘하청의 하청’, 즉 불법 다단계식 재하도급을 준다. 문제는 이러한 하도급 구조 속에서 선박 건조 공정 기한이 빠듯하다는 점이다. 특정 공정 절차에서 문제가 생겨 공정 기한을 맞추지 못하게 되면 그 하청업체는 다시 일을 수주받기 어렵다. 이 때문에 하도급 업체나 근로자들은 목숨 걸고 공정 기한을 맞춘다는 기조로 일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무리를 해가며 위험한 작업을 감수하다 보니 산재 피해가 크게 늘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정동석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은 “원청에서는 하청 근로자 산재가 발생하면 공상 처리로 입막음하려 하고, 하청 근로자들은 일자리 때문에 무리하게 일하다 사고가 나도 원청의 눈치를 보느라 산재 신청조차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한 현장에 10개국 이상 출신의 다양한 외국인들이 근무하면서 소통 역시 쉽지 않다. 이러한 소통의 부재는 안전관리 미숙의 주원인으로도 꼽힌다. 현대중공업 출신 40년 차 조선공 최웅의 씨(한국용접기능장협회장)는 “조선업은 마진이 크지 않아 노무비를 아끼는 게 중요해서 잘게 하청을 내린다. 외국인 근로자가 늘어나는 것도 그러한 이유”라고 말했다. 실제 비슷한 업종인 건설업계의 총공사비 대비 노무비 비율은 30%대지만 조선업의 경우 13∼16%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분석된다.
● 계약서 미작성, 대금 결제 지연 등도 문제
조선업계에서 만연한 불법 하도급 문제는 현장 안전 문제 외에 계약서 미작성, 계약 조건 무단 변경, 하도급 대금 결제 지연 등 또 다른 문제점을 양산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12월 하도급 계약 시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SK오션플랜트에 불공정 하도급 거래행위 제재로 과징금 5200만 원을 부과했다. 2019년 2월부터 2021년 12월까지 48개 수급사업자와 총 436건의 선박 부품 제조를 하도급 업체에 위탁하면서 계약서의 서면 발급 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였다. 조선공 최 씨는 “한 공장에서 수백 개 하청업체가 다 같이 일을 하기 때문에 근로 여건이 좋지 않은 사각지대가 있다. 예를 들어 계약서상으로 100만 원을 받아야 하는 결제 대금을 실제로는 80만 원, 90만 원밖에 받지 못하는 게 일상”이라며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정부가 불법 하도급 구조 개선이나 현장 안전관리 감독 강화 등 구체적인 조선소 내 산재 방지를 위한 방안을 강구하지 않고 공염불을 외고 있다고 비판한다. 고용부는 지난해 4월 8개 대형 조선사와 ‘조선업 안전문화 확산 업무협약’을 맺었다. 하지만 해당 업무협약에 조선업 중대재해 핵심 원인인 다단계 하청구조 해소 방안은 빠져 있다는 게 노동계의 지적이다. 민노총 금속노조는 성명에서 “지난해 1월과 2월 연이어 터진 조선소 중대재해 피해자는 모두 하청 노동자였다. 최근 현장에서는 물량팀(재하도급)이 오히려 늘고 있다”며 “조선소 다단계 하청구조가 중대재해 핵심 원인이라는 것을 고용부만 모르쇠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조선업 불법 하청에 안전은 ‘뒷전’… 4년간 산재 피해 43.5% 증가
작년 산재 사망자 5년 중 최고치
배 한 척 건조에 하청업체 수백 곳… 공정별 기한 못 맞추면 수주 불이익
원청 눈치 보느라 산재 신청 어렵고, 외국인 근로자와 소통 부재도 문제
계약서 미작성 등 의무 위반 많아… “정부, 불법 하청구조부터 개선을”
● 사업장 내 불법 하도급 만연, 안전수칙은 뒷전
조선소 내 산업재해가 급증하는 원인으로는 사업장 내 만연한 불법 재하도급으로 안전수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 꼽힌다. 고용부는 조선업 등 산재 취약 업종을 대상으로 안전수칙 교육 및 산재 방지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진행 중이지만, 현장에서는 바쁜 건조 일정 때문에 안전은 뒷전으로 밀려난 상황이다. 조선업 현장에선 배 한 척을 만들기 위해 한 독(dock)에 수백 개의 하청업체가 모여 함께 작업을 한다. 조선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원청기업들은 안전사고 책임을 회피하고 건조 기간을 단축하려는 목적으로 ‘하청의 하청’, 즉 불법 다단계식 재하도급을 준다. 문제는 이러한 하도급 구조 속에서 선박 건조 공정 기한이 빠듯하다는 점이다. 특정 공정 절차에서 문제가 생겨 공정 기한을 맞추지 못하게 되면 그 하청업체는 다시 일을 수주받기 어렵다. 이 때문에 하도급 업체나 근로자들은 목숨 걸고 공정 기한을 맞춘다는 기조로 일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무리를 해가며 위험한 작업을 감수하다 보니 산재 피해가 크게 늘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정동석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은 “원청에서는 하청 근로자 산재가 발생하면 공상 처리로 입막음하려 하고, 하청 근로자들은 일자리 때문에 무리하게 일하다 사고가 나도 원청의 눈치를 보느라 산재 신청조차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한 현장에 10개국 이상 출신의 다양한 외국인들이 근무하면서 소통 역시 쉽지 않다. 이러한 소통의 부재는 안전관리 미숙의 주원인으로도 꼽힌다. 현대중공업 출신 40년 차 조선공 최웅의 씨(한국용접기능장협회장)는 “조선업은 마진이 크지 않아 노무비를 아끼는 게 중요해서 잘게 하청을 내린다. 외국인 근로자가 늘어나는 것도 그러한 이유”라고 말했다. 실제 비슷한 업종인 건설업계의 총공사비 대비 노무비 비율은 30%대지만 조선업의 경우 13∼16%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분석된다.
● 계약서 미작성, 대금 결제 지연 등도 문제
조선업계에서 만연한 불법 하도급 문제는 현장 안전 문제 외에 계약서 미작성, 계약 조건 무단 변경, 하도급 대금 결제 지연 등 또 다른 문제점을 양산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12월 하도급 계약 시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SK오션플랜트에 불공정 하도급 거래행위 제재로 과징금 5200만 원을 부과했다. 2019년 2월부터 2021년 12월까지 48개 수급사업자와 총 436건의 선박 부품 제조를 하도급 업체에 위탁하면서 계약서의 서면 발급 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였다. 조선공 최 씨는 “한 공장에서 수백 개 하청업체가 다 같이 일을 하기 때문에 근로 여건이 좋지 않은 사각지대가 있다. 예를 들어 계약서상으로 100만 원을 받아야 하는 결제 대금을 실제로는 80만 원, 90만 원밖에 받지 못하는 게 일상”이라며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정부가 불법 하도급 구조 개선이나 현장 안전관리 감독 강화 등 구체적인 조선소 내 산재 방지를 위한 방안을 강구하지 않고 공염불을 외고 있다고 비판한다. 고용부는 지난해 4월 8개 대형 조선사와 ‘조선업 안전문화 확산 업무협약’을 맺었다. 하지만 해당 업무협약에 조선업 중대재해 핵심 원인인 다단계 하청구조 해소 방안은 빠져 있다는 게 노동계의 지적이다. 민노총 금속노조는 성명에서 “지난해 1월과 2월 연이어 터진 조선소 중대재해 피해자는 모두 하청 노동자였다. 최근 현장에서는 물량팀(재하도급)이 오히려 늘고 있다”며 “조선소 다단계 하청구조가 중대재해 핵심 원인이라는 것을 고용부만 모르쇠하고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