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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산재통계가 말해주지 않는 것들

관리자
2026-01-14
조회수 273

산재통계가 말해주지 않는 것들




▲ 구은회 일환경건강센터 PL


나 역시 AI를 자주 사용한다. 처음에는 검색용으로, 어느 순간부터는 글쓰기 작업을 돕는 에디터로, 그리고 최근엔 통계분석 보조도구로 이용하고 있다. 무엇보다 통계분석에서 AI와의 협업으로 신세계를 경험하는 중이다. 겨우 코딩을 마치고 엔터키를 눌렀다가 에러 메시지가 줄줄이 뜨던 식은땀 나는 순간이 확실히 줄어들었다.

최근 나는 공식 절차를 거쳐 산재승인데이터를 분석할 기회가 있었다. 분석자에게 좋은 데이터를 확보하는 일은 곧 희열이다. 그러나 의미 있는 분석을 시도할수록, 산재승인데이터는 필요한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예방의 관점에서 무엇을 먼저 바꿔야 하는지, 어디에 개입해야 하는지 보여주지 않았다. <무사안일> 마흔다섯 번째 사연은 현재 수준의 산재승인데이터를 활용한 통계분석이 왜 예방의 출발점이 되지 못하는지, 그리고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지 묻는 데서 출발한다.

행정통계로서 산재승인데이터의 구조적 한계

산재 관련 논의는 언제나 통계에서 출발한다. 주기적으로 발표되는 산재 사망자수와 산재승인건수는 정책의 성과를 평가하는 핵심 지표로 활용된다. 숫자는 명확하고 비교 가능하며 정책 변화의 전후를 설명하는 데에도 편리하다.

우리가 흔히 산재통계라고 부르는 자료의 중심에 산재승인데이터가 있다. 이 데이터는 산재사고나 직업병이 발생한 사실 자체를 기록하지 않는다. 사고나 질병이 발생한 이후 노동자가 산재를 신청하고, 행정적·의학적 심사를 거쳐, 법적 기준에 따라 승인된 결과만을 집계한다. 다시 말해 ‘산재 발생 통계’가 아니라, 산재 승인 결과를 모은 ‘행정통계’다.

실제로 산재승인데이터상 숫자가 늘거나 줄었다고 해서, 이것이 곧 현장의 위험이 커졌거나 줄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예컨대 산재신청건수 자체가 늘거나, 산재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거나, 산재 인정기준이 노동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개선되면 산재승인건수도 증가한다. 따라서 산재통계는 위험의 크기나 분포를 직접 보여주기보다는, 산재 제도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에 가깝다.

산재승인데이터에는 선택 편의(selection bias)라는 구조적 한계도 있다. 산재를 신청하지 않은 사고나 질병은 통계에 남지 않는다. 신청했더라도 업무연관성을 설명하기 어렵거나 기준에 맞지 않으면 제외된다. 특히 직업병처럼 증상이 늦게 나타나고 인과관계 입증이 어려운 경우, 가장 위험한 집단일수록 통계의 바깥으로 밀려나기 쉽다.

산재통계가 취약집단을 포착하지 못하는 이유

특히 직업병 예방의 관점에서, 산재승인데이터는 ‘산재 취약집단’을 식별하는 데 결정적 한계를 드러낸다. 첫째 ‘분모’의 부재다. 산재통계는 “몇 건이 승인됐는가”는 말해주지만, “어떤 규모의 집단에서 나온 결과인가”는 설명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A업종에서 산재승인 100건, B업종에서 50건이 발생했을 때, A업종이 더 위험하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만약 A업종 노동자가 10배 많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예방은 노출집단 대비 발생 위험, 즉 발생률과 상대위험을 기준으로 설계돼야 한다. 그러나 산재승인데이터만으로 이를 계산하기는 어렵다. 이는 실제 위험과 예방의 우선순위가 어긋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두 번째 한계는 노출 정보의 빈약함이다. 가령 어떤 물질, 어떤 작업, 어떤 작업조건이 질병을 만들었는지 알아야 직업병 예방 대책을 세울 수 있다. 그러나 산재승인데이터는 질병이 승인됐다는 결과만 보여줄 뿐, 그 질병을 부른 노출 조건을 충분히 담고 있지 않다.

세 번째 한계는 시간축의 왜곡이다. 직업성암이나 소음성 난청, 진폐 등은 수년에서 수십 년 전의 노출이 누적돼 나타난다. 따라서 올해 승인된 산재통계는 상당 부분 과거 작업환경의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이 점을 고려하지 않으면 우리는 과거의 위험을 현재의 문제로 착각하거나, 아직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현재의 위험을 과소평가하게 된다.

직업병 예방을 가로막는 데이터의 분절

직업병 예방은 단일 사건의 숫자를 줄이는 문제가 아니다. 노동자의 노출, 신체 변화, 질병, 제도적 처리 과정을 하나의 연속된 흐름으로 이해하는 문제다. 예방은 이 경로의 어딘가에서 위험을 조기에 포착하고 개입하는 일이다.

그러나 현재의 데이터 체계는 이 과정을 하나로 보지 않는다. 산재승인데이터는 이러한 경로의 맨 끝에 놓인 결과만을 기록한다. 반면 노출 정보는 ‘작업환경측정’ 결과에, 초기 건강 변화는 ‘특수건강검진’과 ‘건강보험’ 데이터에, 작업의 맥락은 ‘산업재해조사표’에, 잠재적 위험은 ‘물질안전보건자료(MSDS)’에 흩어져 있다. 각각의 데이터는 서로 연결되지 않은 채 따로 관리된다. 결국 문제는 데이터 부족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정보들이 직업병 예방을 향해 함께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직업병 예방을 가능하게 하려면, 흩어져 있는 데이터를 연결해 하나의 연속된 흐름으로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논의의 초점은 어떤 데이터를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할 것인가에 맞춰져야 한다. 먼저 고용보험과 건강보험 데이터다. 이 자료는 누가 어디에서 일하고 있는지에 대한 분모 정보와 함께, 산재신청 여부와 관계없이 어떤 질병이 증가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다음으로 작업환경측정과 특수건강검진 자료다. 작업환경측정은 어떤 노출이 존재하는지, 특수건강검진은 그 노출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려준다.

산업재해조사표의 원시자료도 중요하다. 재해는 통계 이전에 작업 과정에서 발생한 구체적 사건이다. 어떤 공정과 작업 조건에서 문제가 발생했는지 알지 못하면, 예방 대책은 추상적 수준에 머물게 된다. 원시자료는 통계를 다시 현장의 언어로 되돌린다.

산재승인 결과뿐만 아니라, 산재신청 자료와 불승인 자료도 필요하다. 승인된 사례만으로는 위험의 전체 모습을 파악할 수 없다. 누가 신청하지 못했고, 누가 인정받지 못했는지 함께 살펴야 특정 집단이나 질환이 왜 통계에서 반복적으로 배제되는지 이해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사업장의 MSDS와 물질 사용 목록이다. 어떤 물질이 사용되고 있는지를 아는 것은 노출 가능성의 범위를 설정하는 일이다. 이는 질병 발생 이후가 아니라, 위험이 드러나기 전 단계에서 개입하기 위한 최소 조건이다.


데이터 연결을 위한 ‘노동건강 데이터센터’


각각의 데이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러나 서로 연결해 분석할 수 있다면, 예방에 필요한 질문에는 대답할 수 있다. 물론 모든 데이터를 한 번에 통합하기는 어렵다. 개인정보 보호 문제와 함께, 데이터를 각각 관할하는 정부기관 사이의 장벽 역시 분명한 제약으로 존재한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할 수 있을까. 이는 산업보건과 직업환경의학 영역에서 데이터를 다루는 이들이 오래도록 붙잡고 있는 질문이다. 최근 이 문제를 두고 산업보건 분야 데이터 분석 전문가와 의견을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 길지 않은 대화 속에서, 퍼즐 하나가 맞춰지는 느낌을 받았다. 해답은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았다. 현재 운영 중인 근로자건강센터 가운데 한 곳을 ‘노동건강 데이터센터’라는 파일럿 기관으로 전환해 보자는 제안이었다.

노동건강 데이터센터의 역할은 분명하다. 여러 정부기관에 흩어져 있는 데이터들을 연결해 분석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다. “얼마나 승인됐는가”를 세는 통계가 아니라, “어디에 위험이 축적되고 있는가”를 드러내는 데이터 생산 방식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새로운 통계가 아니다. 이미 존재하는 데이터를 예방의 언어로 전환하는 구조다. 이는 개별 연구자나 현장의 노력에 맡길 수 있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 특히 고용노동부가 책임 있게 다뤄야 할 과제다. 다른 부처에서 관장하는 데이터들이 산재예방의 자료로 활용될 수 있도록 설득하는 일 역시 노동부의 몫이다.

산재통계를 사후 설명의 숫자로 남겨둘 것인가, 아니면 위험을 드러내고 개입을 앞당기는 도구로 전환할 것인가. 선택은 이제 정책의 몫이다.

일환경건강센터 PL (tokki7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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