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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순 엄마 데려간 숨병, 그리고 4월

관리자
2025-04-08
조회수 1691

애순 엄마 데려간 숨병, 그리고 4월



▲ 구은회 일환경건강센터 PL

여기서 내가 먼저 질질 짜면 천년만년 놀림감이 될 게 뻔하다. 그래도 코끝이 시큰거리고 눈가가 축축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최근 종영한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함께 시청하던 우리집 두 식구의 눈치게임 현장이다. 사실 어린 애순이가 엄마와 작별할 때부터 나의 눈물샘은 비상사태였다. <무사안일> 스물아홉 번째 사연은 고작 스물아홉 먹은 애순이 엄마를 데려간 ‘숨병’에 관한 이야기다.

수탈의 도구였던 해녀의 물안경

제주해녀에 대한 자료를 뒤지다 재미있는 글을 발견했다. ‘해녀의 몸과 숨의 생태적 의미’라는 제목의 제주대 석사논문이다. 서론을 두어 장 읽었을 때 느낌이 왔다. “이거 선수가 쓴 글인데? 누구지?”

논문의 저자 고희영은 제주 우도의 해녀들을 7년간 추적한 다큐멘터리 ‘물숨’으로 데뷔한 영화감독이자 문학인이다. 그녀는 제주해녀 75명의 구술을 기반으로 해녀의 몸이 시대적 배경에 따라 어떻게 변해 왔는지 분석한 내용을 논문에 담았다. 특히 해녀들을 위한 보호장구라 할 수 있는 ‘물안경’과 ‘잠수복’에 대한 분석이 흥미롭다.

19세기 말 제주까지 불어닥친 근대화의 바람은 해녀들의 생활상도 바꿔놓았다. 1876년 개항 이후 1883년 일본이 만든 ‘재조선국 일본인민통상 장정’을 토대로 1890년 일본어민의 조선 통어가 정식으로 인정됐다. 일본과 조선의 어민이 정해진 해역에 상호 입어할 수 있다는 내용이나, 실질적으로는 일본의 이익을 위해 일방적으로 맺어진 불평등 조약이었다. 잠수기 어선을 앞세워 제주 연해에 몰려든 일본인들은 전복 등 해산물을 싹쓸이해갔다.

같은 시기 제주해녀 중 일부는 일본상인에게 고용돼 일본 연해에서 조업(바깥물질)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제주해녀의 수확량이 일본인에 한참 못 미쳤다. 이때까지만 해도 제주해녀들은 물안경 없이 맨눈으로 물질을 했다. ‘장비빨’ 차이가 생산량 차이로 이어진 것이다. 그러자 일본상인들은 제주해녀들에게 낡은 물안경을 팔아넘기며 더 많은 해산물을 채취하도록 강요했다. 노동자 보호장구로 여겨지는 물안경이 수탈의 도구로 도입됐다니 역사의 아이러니다.

▲ 1971년 제주해녀의 모습 <셀수스협동조합>▲ 1971년 제주해녀의 모습 <셀수스협동조합>

고무 잠수복 입으면 검은 아기 낳는다?

제주해녀 하면 떠오르는 검정색 고무 잠수복은 1969년에 이르러서야 등장한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재일교포들이 고향에 방문하며 들고 온 고무 잠수복이 해녀들 사이에 인기를 끌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통 물옷인 물소중이와 물적삼은 한겨울 추위를 감싸주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거친 파도를 뚫고 하루 수백 번씩 자맥질하다 보면 옷감이 쉽게 해지는 문제도 있었다.

네오프렌 스펀지로 만든 최신 고무 잠수복은 옷감이 질기고 추위에 강했다. 옷감 자체 부력으로 수영을 못해도 물에 뜰 수 있었다. 반면 신문물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으니 “고무옷 입으면 자궁이 좁아져 아기 못 낳는다” “검은 아기 낳는다” “암에 걸린다” 같은 뜬소문도 떠돌았다.

고무 잠수복의 등장은 제주해녀의 물질작업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강력한 체온보호 기능으로 1년 365일 물질이 가능해졌다. 바닷물에 쉽게 뜨는 특징으로 물질시간이 절대적으로 길어졌다. 이는 양날의 검이었다. 1975년 진행된 잠수실태조사에서 제주해녀들은 “고무 잠수옷 착용으로 장시간 작업이 가능해지면서 허리와 다리가 꽉 조여 신경통이나 두통의 원인이 되고, 옷이 몸에 밀착돼 동작이 자유롭지 못한 단점이 있다”고 진술하고 있다.

살기 위해 숨을 멈춘 뒤 ‘휘이익~’

제주해녀들의 수중작업을 일컫는 ‘나잠(裸潛)’을 거칠게 해석하면 ‘벌거벗은 자맥질’이라는 뜻이다. 산소통 없이 오로지 자신의 숨만으로 바닷속에 들어가 해산물을 채취하는 무호흡 잠수작업이 나잠어업이다.

제주해녀는 ‘숨비소리’로 리듬을 조절하며 잠수를 반복한다. 이들은 물속에서 참았던 숨을 내쉴 때 특별한 방법으로 호흡하는데, 먼저 입속의 이산화탄소를 내뱉은 다음 폐를 빠르게 확장하면서 공기를 들이신다. 이때 나는 ‘휘익, 휘이익~’ 휘파람 같은 소리가 숨비소리다. 살기 위해 멈춰야 하는 역설의 숨이다.

드라마 속 애순이 엄마 전광례는 1932년 태어난 제주해녀다. 물질 나갈 때 물안경은 썼지만 고무 잠수복은 입어보지 못했다. 물소중이에 물적삼 차림이었다. 삶의 무게가 짓눌러오는 순간엔 담배도 태웠다. 본인 나이 스물아홉, 애순이가 열 살 되던 해 숨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숨병은 잠수병의 제주방언이다. 해녀‧잠수부‧스쿠버다이버 같은 ‘잠수작업자’, 잠함공법이 이뤄지는 대기압 이상 작업실이나 수갱 내부에서 일하는 ‘고압 실내작업자’에게 나타나는 질환이다. 산업안전보건 관련 법령에서는 주로 ‘감압병(Decompression sickness)’으로 명명한다.

감압병은 기압이 급변할 때 우리 몸속 기체, 특히 질소가 기포로 변하면서 발생한다. 호흡시 체내에 들어온 공기의 78%를 차지하는 질소는 비활성기체라서 평상시에는 특별히 반응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압이 급변할 때 몸 안에 녹아있던 질소가 기포로 변하면서 혈관이나 림프관‧신경 등에 물리적‧생화학적 손상을 입힌다. 심한 경우 생명을 위협한다.

감압병은 1형과 2형으로 구분된다. 1형 감압병은 어깨‧무릎‧팔꿈치 등 관절통증과 발진‧가려움‧얼룩덜룩한 피부색 같은 피부증상을 동반하나 증상 자체는 경미한 편이다. 반면 2형 감압병은 심각한 형태의 신경계‧내이‧심폐증상을 동반한다. 근력약화‧시각장애‧배뇨이상(신경계), 어지럼증‧이명‧구토(내이), 비활성기체 기포가 폐나 심장에 영향을 미쳐 발생하는 흉통‧호흡곤란‧기침(심폐) 등이 나타난다. 2형 감압병의 경우 영구적인 장애나 죽음에 이를 수 있으므로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 자료사진 구은회▲ 자료사진 구은회

그날, 바다 아래서 시작된 고요한 위험

제주해녀의 나잠어업과 달리 ‘잠수장비’를 이용해 수중에서 이뤄지는 모든 기술적 작업을 ‘산업잠수’라고 칭한다. 대표적인 산업잠수 작업으로 △수중 용접과 절단 △수중 구조물 검사와 보수 △항만‧댐‧수력발전소 등 수중설비 점검 △선박과 해양 구조물의 유지‧보수 △수중 시공(콘크리트 타설 등) △수중 탐사 △해난구조 등이 있다.

안전보건공단의 ‘잠수작업 사고사망원인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22년 4월까지 총 61명의 노동자가 잠수작업 중 사망했다. 매년 3명 이상 잠수작업으로 숨졌다. 주요 사망원인은 △인접한 두 지역의 수위 차 △선박추진기 불시운전 △압축공기 공급시스템의 결함 등으로 발생한 차압 △스쿠버 실린더의 공기소진 △압축공기 공급중단 △감압병 등이다.

이렇게 숨진 노동자 중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도 있다. 2021년 10월 여수해양과학고 3학년 재학 중 현장실습에 나갔던 고 홍정운 군이다. 홍군은 몸에도 맞지 않는 잠수장비를 매고 물속에서 요트 바닥에 붙어있던 따개비를 청소하다 익사했다. 펴 보지도 못한 꽃이 너무 일찍 졌다.

못다 핀 꽃은 2014년 4월 전남 진도군 조도면 동거차도리 맹골수도 해상에도 있었다. 세월호의 어린 영혼들이다. 당시 구호활동에 참여했던 민간잠수사들 역시 골괴사나 트라우마 같은 후유증으로 고통 받았다. 하지만 이들의 상처는 공식 산재통계에도 잡히지 않는다. 거의 대부분 산재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구조활동 중 발생한 질병·상해는 업무상재해로 볼 수 없다는 것이 불승인 사유다. 지난해 겨울 또 하나의 비보가 들려왔다. 어깨와 골반에 혈액순환이 이뤄지지 않아 뼈가 썩는 증상으로 고통 받았던 민간잠수사 한재명씨가 생업을 접고 이라크 공사현장까지 밀려갔다가 산재로 사망했다는 소식이다.

삶이란 무엇일까. 또 죽음이란 무엇일까. 시커먼 바다 아래서 시작된 그날의 고요한 위험을 다시금 떠올려 보게 되는 4월의 어느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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