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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없이도 잘 살 수 있지” 안아준 남편, 마지막 인사였다 ㅠㅠ

관리자
2023-11-16
조회수 359


“나 없이도 잘 살 수 있지” 안아준 남편, 마지막 인사였다





손해배상 20년, 하청 20년, 죽음 내몰린 20년 <살고 싶은 사람들의 목소리 > 사진전이 열린 1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참석자들이 사진을 관람하고 있다. 2023.11.16 문재원 기자

손해배상 20년, 하청 20년, 죽음 내몰린 20년 <살고 싶은 사람들의 목소리 > 사진전이 열린 1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참석자들이 사진을 관람하고 있다. 2023.11.16 문재원 기자

남편은 순박한 경상도 남자였다.

A씨가 친구 소개로 남편 배달호를 처음 만났을 때, 배달호는 경남 창원 한국중공업에 다니고 있었다. 융통성이 없고 집에 오면 회사 이야기를 잘 하지 않았지만, “그저 착한 사람”이었다고 A씨는 남편을 기억한다. 노조 대의원이기도 했던 배달호의 옷을 A씨가 세탁기에 돌리면 호루라기와 머리띠가 종종 나왔다. 노조 행사가 있을 때면 호루라기를 불며 참여를 독려한 배달호를 동료들은 ‘호루라기 아저씨’라고 불렀다.

배달호가 다니던 한국중공업은 2000년 12월 두산중공업(현 두산에너빌리티)에 인수됐다. 두산중공업은 단체협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노조가 항의하며 파업을 하자 회사는 18명을 해고하고 조합원 61명을 고소·고발했다. 이후 두산중공업의 ‘노조파괴 문건(신 노사문화 정립 방안)’이 드러났지만, 그때 A씨는 몰랐다.

A씨는 몰랐다. 남편은 집에 오면 회사 이야기를 잘 하지 않았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잘 몰라도 A씨는 남편 배달호를 응원했다. 남편과 동료들은 가끔 집에 모여 이야기를 나눴고, A씨와 두 딸은 두산중공업 공장에서 열린 가족 행사에 참석하기도 했다.

두산중공업은 파업을 이유로 노조 조합원들에게 65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배달호와 A씨의 생활도 크게 기울었다. 언젠가부터 남편은 생활비를 주지 못했고, A씨는 식당에서 일을 시작했다.

2003년 1월9일 노조 활동을 이유로 한 두산중공업(현 두산에너빌리티)의 손배·가압류에 항의하며 분신해 숨진 배달호씨.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2003년 1월9일 노조 활동을 이유로 한 두산중공업(현 두산에너빌리티)의 손배·가압류에 항의하며 분신해 숨진 배달호씨.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A씨는 몰랐다. 남편 배달호가 2002년 여름부터 월급을 가압류당했다는 것도. 회사에 반대하며 파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정직 3개월 징계를 받았다는 것도. “다른 지역으로 가면 가압류를 해제해주겠다”는 회사의 회유를 거절했다는 것도. 배달호는 티를 내지 않았다. 대신 마트 행사에서 김치냉장고가 당첨돼 신이 난 A씨와 함께 김장하고, 김치냉장고에 차곡차곡 담았다.

2003년 새해가 밝아도 A씨는 몰랐다. 남편 배달호가 몰래 아버지 산소에 다녀오고, 형제들을 만난 것도. 그해 1월8일 한파에 수도꼭지가 얼었다. 남편은 수도꼭지와 보일러를 고치고, “남편이 있으니 좋지”라며 A씨에게 돈이 든 봉투를 줬다. 봉투에는 ‘배달호 45만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다음날인 1월9일, 남편은 출근하면서 ‘내가 없이도 잘 살 수 있느냐’고 물었다. A씨가 ‘아침부터 무슨 소리냐’고 하자 남편은 A씨를 꼭 껴안으며 그동안 고마웠다고 했다.

얼마 뒤 A씨는 회사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남편이 스스로 몸에 불을 붙여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분신해 숨졌다고 했다. 황망하게 회사로 달려간 A씨는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됐다. ‘무분별한 손배·가압류가 노동자의 삶을 파괴한다’는 문제의식이 전국을 뒤흔들었다. A씨도 회사의 책임을 묻는 싸움에 함께했다. 2003년 3월14일, 남편의 분신 65일 만에 A씨는 회사의 사과를 받고 남편의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손해배상 20년, 하청 20년, 죽음 내몰린 20년 <살고 싶은 사람들의 목소리 > 사진전이 열린 1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참석자들이 사진을 관람하고 있다. 2023.11.16 문재원 기자

손해배상 20년, 하청 20년, 죽음 내몰린 20년 <살고 싶은 사람들의 목소리 > 사진전이 열린 1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참석자들이 사진을 관람하고 있다. 2023.11.16 문재원 기자

“노조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손배·가압류를 하지 못하게 하는 법(노동조합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고 들었습니다.” 20년이 지난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노조법2·3조개정운동본부가 개최한 <손해배상 20년, 하청 20년, 죽음 내몰린 20년, 살고 싶어라> 특별사진전 개막식에 A씨의 편지가 대독으로 울려퍼졌다. “그런데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우리 남편과 같은 억울한 죽음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이 법을 막지 말아주십시오.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손배·가압류를 경험했거나 간접고용의 서러움을 겪고 있는 노동자들도 직접 마이크를 들었다. 홍익대 청소노동자 박지선씨는 2011년 일방적인 용역업체 변경으로 인한 대량해고에 항의하며 대학 본관에서 농성하다가 2억8000만원의 손배소를 당했다. 박씨는 “책임져야 하는 사람(원청)이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었다면 집단해고도, 점거농성도, 누군가의 눈물도, 수억의 손해도 없었을 일”이라며 “누구도 좋을 일 없는 일들이 반복되지 않도록 노조법 개정에 동의해 달라”고 했다.


손해배상 20년, 하청 20년, 죽음 내몰린 20년 <살고 싶은 사람들의 목소리 > 사진전이 열린 1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손해배상 피해자인 이태성 한국서부발전 하청노동자가 발언하고 있다. 2023.11.16 문재원 기자

2018년 한국서부발전에서 산재사고로 숨진 하청노동자 김용균씨의 동료인 이태성씨는 “최근 발전5사에서 5년간 안전사고로 198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는데, 하청 협력사 직원이 82%인 163명”이라며 “모든 사업장에서 실질적인 사용자가 책임을 다하는 노조법 2·3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항의 점거농성을 이유로 CJ대한통운에서 20억원의 손배소를 당한 유성욱씨는 “택배현장은 그동안 특수고용의 구조아래 노동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았고, 주 80시간이 넘는 노동시간에 26명이 목숨을 잃었다”며 “더 이상 죽음의 현장에서 일하고 싶지 않고, 더 이상 손배폭탄으로 나와 가정이 파탄나는걸 원치 않는다”고 했다.

노란봉투법은 지난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사용자의 정의를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로 확대하고, 쟁의행위의 요건을 확대하며 파업 참여 노동자들에 대한 손해배상을 엄밀히 따지는 내용이 담겼다. 여당은 법안 처리에 반대하며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거듭 반대 의견을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전망된다.

손해배상 20년, 하청 20년, 죽음 내몰린 20년 <살고 싶은 사람들의 목소리 > 사진전이 열린 1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참석자들이 대통령의 거부권 반대를 외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3.11.16 문재원 기자

손해배상 20년, 하청 20년, 죽음 내몰린 20년 <살고 싶은 사람들의 목소리 > 사진전이 열린 1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참석자들이 대통령의 거부권 반대를 외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3.11.16 문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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