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에 가입하자 사라진 지금-여기 살아갈 자격
: ㈜일강 이주노동자 계약갱신 거절과 지역 '정주'의 조건
1. 회사는 당신에게 살아갈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폭력은 늘 뒤늦게 보였다. 사람이 죽고, 영상이 공개되고, 누군가 통화를 기록해 세상에 내놓은 뒤에야. 나열한다. 지난해 2월, 영암군 돼지축사에서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가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은 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말을 안 들으면 출국시킨다'는 협박이 그를 침묵하게 했다. 사장과 팀장의 상습적인 폭력과 62명분 2억 6천여만원의 체불 사실은 그가 죽고 나서야 드러났다.
지난해 7월, 벽돌 더미에 비닐테이프로 감긴 채 지게차에 매달린 사람의 영상이 공개됐다. 전남 나주의 한 벽돌공장에서 일하 던 스리랑카 출신 노동자였고, 사건 자체는 그보다 다섯 달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올해 7월 18일에는 우즈베키스탄 이주노동자 한 명이 울산의 HD현대중공업 조선소에서 일하다 사망했다. 그러고 나서야 이곳의 우즈베키스탄 노동자들이 근무지를 옮기면 매달 2,000달러를 물어야 한다는 각서에 서명해 온 사실이 알려졌다. 동료들은 고인이 여러 번 다치고 열악한 처우로 근무지를 옮기고 싶어 했으나 각서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이달 10일에는 광주 출입국·외국인사무소 직원과 배달업체 사이에 오간 통화 내용이 공개 됐다. 공개된 통화에는 단속 실적이 더 필요하면 말하라는 업체의 말과 업체의 편의를 봐주겠다는 행정의 말이 함께 등장했다. 이주노동자가 행정의 실적과 업체 편의 사이에서 표적이 되어 거래되는 장면이었다. 이 땅은 이주노동자의 삶을 거래한다. 위에 나열된 건조한 이야기 묶음의 뒷면에는 서로 다른 체류제도가 놓여 있다. 그중 가장 오랫동안, 가장 넓은 범위의 이주노동자를 사업장에 묶어온 제도, 고용허가제(E-9; 비전문취업 비 자)는 2004년부터 정부가 이주노동자를 합법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도입한 것이다.
내국인을 고용하지 못한 국내 중소기업이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게 허가하는 이 제도는 20년 넘게 허용 업종이 확대되며 '인력 수급'의 마중물이 되어 왔다. 정부24 외국인서비스 페이지는 "고용허가제를 통해 취업한 외국인근로자는 인권 보호를 기반으로 내국인과 동등한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 산업안전보건법 등 노동관계법의 적용을 받습니다"라 안내한다.
하지만 우리는 첫 문단만으로 이 땅의 고용허가제가 그런 모습이 아니란 것을 이미 확인했다. E-9 노동자는 입국 당시 계약한 사업장에서 계속 일하는 것이 원칙이며, 계약 종료·갱신거절이나 노동자의 책임이 아닌 법정 사유가 있을 때 사업장변경을 신청할 수 있다. 계약 종료 후 1개월 안에 변경을 신청하고, 신청일부터 3개월 안에 새 근무처로의 변경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 기간 안에 새 사용자를 찾지 못하면 체류를 이어가기 어렵다. 이것은 자유로운 이동권이 아니라, 사용자의 결정으로 시작되는 기한부 탈출구에 가깝다. 따라서 사장의 협박은 노동 현장에서 실재하는 권력이다. 선택지가 제거된 이주노동자는 거래된다. 이주노동자가 이 땅에 살아갈 자격은, 합리적인 제도의 외양을 두른 채 정부가 기업에 위임한 권력을 통해 관리되고 있다. 지금 김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어쩌면 첫 문단의 이야기보다 더욱 건조할 것이다.
자동차부품사인 ㈜일강 김제공장에서 2026년 5월 이후 이주노동자 열세 명이 일터를 떠났다. 회사가 근로계약을 갱신하지 않았고, 체류기간 연장과 비자 변경에 필요한 협조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근거로 제시된 것은 평가 점수였다. 점수가 낮았다는 것이다. 7월 27일 기준 노조 자료에 따르면 김제공장 이주노동자 73명 가운데 59명이 금속노조 전북지부 조합원이었다. 그리고 계약이 갱신되지 않은 열세 명 또한 모두 조합원이다. 평가자 구성이 바뀌고 갱신거절이 시작된 5월은, 일강의 이주노동자들이 이미 금속노조에 가입해 활동하기 시작한 때였다. 그리 고 회사는 "합리적이고 공정한 기준"(일강 단체협약 제33조)을 행사하며 말했다.
"당신은, 이곳에 살아갈 자격이 없다" 고백한다. 이 글은 일강의 폭력을 말하기 위해 첫 문단에 들어갈 삶과 죽음을 선별했다. 어떤 이야기들은 이 글을 시작하기 위해 이미 잘려 나갔다. 무엇이 이야기될 수 있는가. 사람들의 관심을 모아 ㈜일강의 이주노동자들이 직면한 문제를 바라보게 하려면 나 자신과 거래해야 했다. 김제에도 협박은 있었다. 금속노조 전북지부는 8월 11일 성명에서 회사가 지난해부터 이주노동자 조합원에게 탈퇴를 종용하며 "보호소로 보내버리겠다"고 협박해왔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 말은 문서로 남지 않았다. 지금 남아 있는 것은 계약 갱신 거절의 근거인 인사평가표다. 그것은 회사가 갖고 있고, 바깥에선 볼 수 없다. 사람이 사라지는 결과는 같은데 그 과정은 서류의 형태를 하고 있어 폭력으로 보이지 않는다.
삶이 거래되고 있는데도, 그렇게 보이지 않는 폭력이 이 땅에 실존한다. 그리고 이 글은 그 흐릿한 틈을 살핀다. 한편에 질문이 있다. 일강지회는 새벽 5시 로비를 점거하면서까지 무엇을 말하려 했는가? 이 글은 문단에 들어갈 타인의 삶과 죽음을 선별하면서까지 무엇을 말하려 드는가? 다른 한편에 다시 질문이 있다. 누가 회사에게 이주노동자의 생존을 결 정할 권한을 주었는가? 삶의 자격을 규정할 폭력을 묵인하는 체계와 언어는 어떻게 구현되는가?
2. 5월, 자격을 평가하는 이가 바뀌었다
일강 노사가 2025년 체결한 단체협약 제33조의 문언은 다음과 같다.
회사는이주노동자의 체류기간 연장, 비자변경 및 재계약 여부를 결정함에 있어 기능직 보임자 및 부서장의 평가가 반영된 합리적이고 공정한기준에 의한다.
문언만 놓고 보면 이 조항은 노동자를 보호하는 방향에 서 있다. 체류와 재계약이 회사의 임의 판단에 맡겨지지 않도록, 그 결정에 현장의 평가가 반영되어야 한다고 못 박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현장이란 추상적인 장소가 아니라 기능직 보임자와 부서장, 즉 이주노동자가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하는 지를 매일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노조의 투쟁을 통해 맺어진 협약은 그 사람들의 눈을 결정의 근거로 삼기로 했다.
평가제도는 이미 존재했다. 다만 그 제도의 합리성을 규정하는 건 ㈜일강이었다. 금속노조 자료에 따르면 2026년 4월까지는 노동자의 작업을 직접 지켜본 현장 보임자가 평가에 참여했고, 이주노동자의 체류기간 연장과 재계약도 정상적 으로 이루어졌다. 5월이 다가오자 달라졌다. 4월 23일 회사는 지회장을 상대로 부하직원 산재보상금 5,300만원의 구상금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5월부터 금속노조 소속 보임자가 합리적 설명없이 평가에서 배제되고 다른 노동조합 소속 관리자가 평가자로 배치됐다.
현장 반장이 높은 점수를 준 노동자도 재차 평가를 거치며 낙제 점수를 받았다. 노조는 이 두 시점이 겹친다고 보 고 있다. 같은 회사 평택공장에서는 이 평가제도 자체가 시행되지 않고, 김제공 장은 현장 인력이 약 20명 부족한 상태에서 숙련 이주노동자를 내보내며 신규 채용을 병행했다고도 노조는 밝히고 있다. 현재 자료만으로 회사의 의도와 개인별 결정의 부당성을 확정할 수는 없다. 확보된 사실관계가 주로 노조 측 자료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별 전체 평가기록과 점수 산정 기준, 현장평가가 최종결과로 바뀐 과정과 갱신 거절 사 유는 회사 밖에서 확인할 수 없다. 이것은 보이지 않는 영역이다.
금속노조 자료가 보여주는 시간순서대로라면, 일강은 이주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해 활동하자 단체협약의 "합리적이고 공정한 기준"을 이전과 다르게 적용하기 시작했다. 금속노조 전북지부는 "잇따른 이주노동자 조합원들의 계약해지 해고 통보를 규탄하며 회사에 평가 기준과 근거를 공개할 것을 수차례 요구했지만, 사측은 인사권은 전적으로 회사에 있다며 평가 기준조차 공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리고 체류와 계약의 만료일은 기다리지 않는다. 당장 8월 중 2명의 비자가 만료될 예정이다. 일강 이주노동자의 계약은 1년 단위로 갱신된다. 지금과 같은 평가와 갱신거절이 계속된다면 남은 조합원들도 매달 차례로 1~2명씩 같은 판단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일강지회는 지금-여기 살아갈 자격을 말할 문을 찾아 일강의 로비로 향했다.
아래에 정리한 것은 이번 이슈에서 중요한 의문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 안에서 일강이 답하지 않는 한 쭉 가려져 있을 의문들이기도 하다.
-이주노동자 평가자 구성을 2026년 5월부터 변경한 이유는 무엇이며, 변경의 기준과 절차는 무엇이었는가?
-작업을 직접 지휘한 현장 보임자의 평가는 최종 결정에 어떻게 반영되었으며, 반영되지 않았다면 그 근거는무엇인가?
-평택공장과 달리 김제공장에서만 이 평가제도를 시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김제공장 이주노동자의 계약갱신·체류절차에 관한 최종 결정은 어디에서, 누구에 의해 이루어 지는가?
-현장 인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숙련 노동자의 계약을 갱신하지 않고 신규채용을 진행한 이유는 무엇인가?
-갱신이 거절된 노동자가 자신의 평가 결과와 사유를 확인할 방법은 무엇인가?
-노동조합 가입 여부에 따라 갱신 결과에 차이가 없었다는 것을 회사는 어떤 자료로 설명할 수 있는가?
단체협약 제33조는 평가자료의 공개까지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 따라서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협약 위반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평가 결과 때문에 계약과 체류를 잃는 노동자가 그 평가를 볼 수도 반박 할 수도 없다면 협약이 말하는 합리적이고 공정한 기준이 실제로 작동했는지 확인할 방법 자체가 없어지고, 그 상태에서 자신이 차별받았음을 입증할 부담은 체류기간이 끝나기 전에 노동자에게 돌아온다. 협약이 보호하려던 문장은 그대로 남아 있는데, 그 문장을 인용하며 자격을 거두는 쪽도 회사다.
3. 계약 한 장에 매달린 것들
일강지회가 농성에서 내건 요구안을 보면 이 사안이 하나의 비자 절차에 관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요구안에는 계약기간 만료 후의 재계약과 재고용, 고용허가제(E-9) 노동자가 특정활동(E-7) 등으로 체류자격을 변경하려 할 때의 보장, 그 밖의 취업비자 소지자가 체류자격을 변경할 때의 절차 협조, 체류기간 만료 최소 3개월 전 출입국 연장 절차 또는 귀국 후 재입국에 필요한 서류 제공, 그리고 노동자가 원할 경우의 사직과 사업장 변경 보장이 함께 들어 있다.
요구안에는 이미 갱신이 거절된 노동자뿐 아니라 앞으로 계약·체류기간 만료와 체류자격 변경을 앞둔 조합원의 문제까지 함께 담겨 있다. 현 단계에서 이 사례 전부를 하나의 체류자격으로 묶어 설명할 수 없다. 다만 서로 다른 제도를 가로질러 반복되는 것은 사용자의 결정이나 협조가 체류의 지속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어느 절차에서는 근로계약이, 어느 절차에서는 서류 제공이나 추천이, 또 다른 절차에서는 사업장 변경의 사유를 입증하는 과정이 관문이 된다.
노동조건에 항의해야 할 상대와 체류의 지속을 좌우 하는 상대가 같은 사람이라는 것. 앞 절에서 말한 위임은 여기서 구체적인 절차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리고 계약이 끝날 때 흔들리는 것은 일자리만이 아니다. 가장 먼저 흔들 리는 것은 다툴 수 있는 시간과 조건이다. 노동위원회의 조사와 판정에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계약과 체류에는 각각의 만료일이 있다.
계약이 끝난 노동자 는 짧은 기간 안에 사업장변경이나 체류기간 연장, 다른 체류자격으로의 변경 을 시도해야 한다. 그 절차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출국하거나 자격 없는 체류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출국한다고 구제절차 자체가 곧바로 끝나는 것은 아니지만, 당사자가 현장에서 증거를 모으고 조사에 대응하며 복직을 요구할 현실적 조건은 크게 훼손된다. 노동법의 시계와 출입국 행정의 시계는 서로 맞춰져 있지 않다. 다음으로 불안정해지는 것은 가족의 자격이다. 일부 지역특화형 체류자격에 서 동반가족의 체류는 주된 체류자의 자격에 연결되어 있다.
주된 체류자의 계약과 체류가 흔들리면 가족의 체류 연장과 배우자의 취업, 현재 거주지와 자녀의 학교생활도 함께 불안정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하나의 인사결정이 한 사람의 일자리를 넘어 한 가구가 김제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흔드 는 것이다. 한국인 조합원도 계약 갱신을 거절당할 수 있고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다만 계약의 종료가 체류의 불안정으로 이어지고, 다시 다툴 현실적 조건과 가족의 생활 기반까지 흔드는 제재는 이주노동자에게만 가할 수 있다.
노동조합을 무력화하려는 의도가 체류제도를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체류의 취약성 역시 이주노동자에게 원래부터 있던 성질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가 체류의 허가와 연장을 근로계약과 사용자의 협조에 연결해두었기 때문에 생겨났고, 그렇게 만들어진 취약성은 그것을 쓸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 람에게 언제든 무기가 된다. 일강에서 벌어진 일이 그 선택의 한 사례인지는 앞으로 판정될 문제일 것 이다.
다만 살펴왔듯 평가자 교체, 현장 평가와 최종 결과의 불일치, 김제공 장에만 적용된다는 평가제도, 조합원에게 집중된 갱신 거절, 그리고 평가자료 의 독점을 함께 놓고 보면, 체류와 계약을 결정하는 권한이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차등적 불이익의 경로로 사용됐을 개연성이 있다. 그리고 최종 판정이 내려질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노동자가 먼저 이 지역에서 사라진다는 사실은, 판정을 기다릴 수 없는 이유가 된다.
4. 전북은 "열심히 일하면 당신도 정주할 수 있다"고 했다
정부는 합리적인 제도의 형태로 이주노동자의 입국을 허용해왔고, 갈수록 그 문을 넓히려 한다. 그 체계 안에서 회사가 그들의 '정주'를 결정하는 권력은 노동자를 침묵시키면서 정작 스스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방식으로 정당화된다. 제도가 알아서 굴러가는 것처럼 보이는 동안, 실제로 결정하는 자리는 시야에서 사라진다. 이 사안을 김제의 개별 사업장 분쟁으로만 볼 수 없다. 김제시는 전북의 인구감소지역 가운데 하나이며, 지역특화형 비자 사업이 전국에서 가장 활발 하게 작동해온 기초자치단체다.
전북특별자치도의회에서 발주한 연구(전희진· 이주연·박지애·전아람, 2025)에 따르면 2023년부터 2025년 7월까지 전북에서 추천된 지역특화 우수인재(F-2-R) 818명 가운데 430명, 즉 52.6%가 김제시에서 나왔다. 2025년 6월 기준으로 김제시에 체류하는 F-2-R 자격자는 330명이고 그 동반가족은 239명으로, 전북 전체 동반가족 474명의 절반을 넘는다. 전국에 있는 F-2-R 취득자의 동반가족 규모(1,878명)를 고려할 때, 8명 중 1명이 김제에 있다는 뜻이다. 지역특화 숙련기능인력(E-7-4R) 추천도 김제시가 도내에서 가장 많다. 김제시는 이들을 부르기 위해 여러 가지를 내걸었다. 지역기반 비자 취득자에게 정착지원금을 지급했고, 한국어 교육과 취업상담회와 정기 간담회를 운영했다.
홍보 자료가 앞세운 것은 배우자와 미성년 자녀를 함께 데려올 수 있고 배우자도 일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지방소멸에 대응해 사람을 불러오고, 가족 단위로 정착시키고, 인구와 경제활동을 늘린다는 설계 구조다. 앞 절에서 본 것처럼 그 가족의 자격은 주된 체류자의 자격에 매달려 있다. 오라고 말할 때 내건 조건이 떠나야 할 때는 연쇄의 경로가 된다. 일강의 피해 조합원 가운데 누가 지역특화형 체류자격을 가졌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계약갱신이 거절된 열세 명 각각의 체류자격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김제가 도내에서 지역특화형 비자가 가장 활발하게 작동해온 기초자치단체라는 사실은 계약과 체류의 중단이 개인을 넘어 가족의 정주조건까지 흔들 수 있는 지역이 어디인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다음은 설계되지 않았다. 전북도의회의 작년 연구는 이미 진단을 내려두었다. 전북의 지역특화형 비자 사업에는 전담 기관이 없고, 유입에서 정착과 사후관리에 이르는 전주기 지원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 위탁기관의 담당 인력넷이 신청 접수와 서류 검토, 추천 명단 작성, 박람회 개최까지 감당하는 구조에서 취득자에 대한 사후관리는 구조적 으로 후순위로 밀리거나 사실상 수행되지 못한다고 이 연구는 적었다.
도내에서 F-2-R 체류자가 가장 많은 김제시조차 전담 인력이 따로 없이, 새만금경 제국-투자유치과-기업지원팀의 담당 주무관 한 사람이 지역특화형 비자 업무와 함께 지능형농기계 실증단지 사업과 수출기업 지원사업 등을 겸하고 있다는 사실도 덧붙였다. 사후관리의 공백은 그냥 비어 있지 않다. 그 자리를 사업장이 채운다. 지역 특화형 비자의 추천 주체는 지방정부이고 최종 허가권은 법무부에 있다.
그러나 그 절차의 앞에는 기업과의 고용계약이 놓여 있다. 기업이 계약을 갱신하 지 않으면 지방정부의 추천과 출입국의 허가를 요청할 통로부터 좁아진다. 사후관리의 공백을 기업이 공식적으로 위임받은 것은 아니지만, 그 공백 속에서 기업의 계약 결정은 체류절차의 첫 번째 관문이 된다. 1절에서 말한 위임은 여기서 완성된다. 정주 정책의 지불되지 않은 비용은 그렇게 이주노동자의 몸 으로 옮겨간다. 지방정부의 권한이 부족하기 때문인가? 지방정부에 최종적인 체류 허가권 이 없는 것은 맞다. 그러나 아무 권한도 없는 것은 아니다.
「인구감소지역 지원 특별법」 제26조는 법무부장관이 인구감소지역을 관할하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요청하는 경우 사증 발급 절차와 체류자격의 변경, 체류기간의 연장에 관한 요건을 달리 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지역특화 우수인재의 근무처 변경 역시 사업장 휴·폐업 등으로 기존 사업장 또는 업종에서 계속 일하기 어렵고 지방자치단체의 추천을 받은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근무처 변경이 가능하다. 부를 때 쓴 권한이 지킬 때에도 쓰일 수 있는지는 시도되지 않은 채 침묵의 영역에 놓여 있다. 불과 넉 달 전, 고용노동부 익산지청의 개입 속에서 회사는 지회장을 상대로 제기한 구상금 소송을 취하한 전례가 있다.
하지만 금속노조 전북지부는 7월 30일 익산지청장을 면담한 자리에서 현행법상 사용자가 하지 않겠다고 하면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취지의 답을 들었다고 전한다. 고용노동부의 권한 안에서는 그 말이 맞을 수 있다. 다만 제도 전체를 놓고 보면 아직 쓰이지 않은 권한이 남아 있고, 그것을 쓸 주체가 정해지지 않았을 뿐이다. 그 사이 열세 명이 떠나고 두 사람의 만료일이 다가온다. 그리고 현재 확보한 자료에서는 김제시와 전북특별자치도가 이 사안에 개입하거나 공식 입장을 밝힌 사실을 확인하지 못했다.
5. 삶의 자격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땅으로
8월 11일 새벽 다섯 시 일강의 로비에 들어간 것은 갱신이 거절된 이주노동자들만이 아니다. 지회장과 사무장, 대의원이 먼저 농성에 들어갔고, 출입문이 봉쇄되자 일강지회 조합원들이 사무동 앞에 모였다. 이주노동자 조합원의 계약과 체류를 지키는 일이 지회 전체의 투쟁이 되었다. 이 장면을 노동조합의 당연한 모습으로 기록해서는 안 된다. 노동조합이 언제나 체류자격이 다른 노동자들을 같은 조합원으로 대했던 것은 아니다.
이주노동자를 함께 조직해야 할 동료가 아니라 내국인의 일자리와 임금을 위협하는 외부의 노동력으로 바라본 시간도 있었다. 그러므로 일강지회의 공동투쟁은 노동조합이 본래 선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 아니다. 이 사업장에서 그 것이 가능해진 조건을 따로 물어야 한다. 7월 27일 기준 노조 자료에 따르면 김제공장 이주노동자 73명 가운데 59명이 금속노조 조합원이었고, 이들은 지회의 주변에 잠시 머물다 떠나는 사람 들이 아니었다.
함께 노동조합을 만들고, 교섭하고, 같은 현장에서 일해온 조합원이었다. 계약 만료 때마다 누군가 떠나는 것은 곧 지회의 조합원이, 매일 마주하던 동료가 사라지는 일이었다. 체류자격을 이용해 노동자를 나누는 일이 반복된다면 그다음에는 어떤 권한으로 누구에게 불이익이 향할지도 알 수 없다. 어쩌면 그것이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이것만으로 일강의 새벽을 모두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체류자격의 차이가 분리의 선이 아닌 공동투쟁의 이유가 된 과정은 그 곁을 다시 살필 시간이 있어야만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지금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분명 하다. 일강지회는 개인별 비자 문제로 처리될 수 있었던 일을 노동조합 전체의 고용과 단결권 문제로 바꾸어놓았다. 그러나 이것이 사건에 그친다면, 노동자가 자신의 체류와 고용을, 나아가 지금-여기 살아갈 자격을 지키기 위해 매번 로비를 점거해야 한다면 제도와 행정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다음의 '자격 만료'가 오기 전, 이곳의 주체들이 해야 할 일이 있다. 첫 문단 의 삶과 죽음, 그리고 침묵 곁에 나열한다.
1) ㈜일강
일강은 이미 이루어진 계약갱신 거절을 철회하고, 일터를 떠난 노동자에 대해서는 재고용 절차를, 만료를 앞둔 노동자에 대해서는 기존 계약의 갱신 절차를 즉시 개시해야 한다. 평가기준과 절차를 바로잡고 추가적인 갱신거절을 중단해야 한다. 평가기준과 평가절차, 평가자 구성을 노동조합과 당사자에게 공개하고, 개인별 평가기록과 결정 사유는 해당 당사자에게 제공해야 한다. 단체협약 제33조에 따라 현장 보임자와 부서장의 평가가 실제로 반영되는 절차를 복원하고, 당사자의 체류자격에 따라 필요한 기간연장·자격변경·사업장 변경 절차와 서류 제공에 협조해야 한다. 사무동 출입 봉쇄를 비롯한 노동조합 활동 방해와 추가적인 불이익 조치를 중단해야 한다. 무엇보다 그에 앞서 노사면담에 성실히 임하고 형사고소 방침을 철회해야 할 것이다.
2) 고용노동부 익산지청
고용노동부 익산지청은 평가자 변경과 금속노조 조합원에게 집중된 갱신거절이 노조법상 불이익취급과 지배·개입에 해당하는지 즉시 수사하고, 수시감독 또는 특별감독에 착수해야 한다. 회사가 보유한 평가기록과 인사자료를 신속히 확보해 관련 자료가 변경되거나 폐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노동위원회의 판정에는 시간이 걸리고 체류와 계약에는 만료일이 있다. 익산 지청은 8월 중 체류기간 만료 예정자 2명에 대해 관할 출입국·외국인관서 및 김제시·전북특별자치도와 긴급협의를 열고, 당사자가 체류 심사에 제출할 수 있도록, 익산지청에 접수된 사건과 조사 진행 사실을 확인하는 자료를 제공해야 한다. 7월 30일 지청장 면담에서 밝힌 검토·조치 계획과 그 이행 경과도 공개해야 한다.
3) 김제시와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와 전북특별자치도는 우선 피해 노동자와 만료 예정자의 체류자격, 지역특화형 비자 추천 여부와 만료일을 확인하고 이를 전담할 담당자를 지정해야 한다. 지역특화형 비자에 해당하는 노동자에게는 지자체 추천을 통한 근무처 변경이나 체류 유지의 경로가 있는지 즉시 검토하고, 적용이 어렵다면 「인구감소지역 지원 특별법」 제26조에 근거해 노동분쟁 중인 이주노동자를 위한 체류 특례를 법무부에 공식 요청하고, 근무처 변경을 지원할 방안도 함께 협의해야 한다.
지역특화형 비자 취득자뿐 아니라 지역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가 계약·체 류·노동권 문제를 함께 상담하고 조정받을 수 있는 사후관리 창구를 설치해야 한다. 향후 지역특화형 비자 참여기업과 신규 수용기업을 심사할 때에는 임금 체불·산업안전·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차별과 계약갱신 절차를 점검해야 한다. 노동관계법 위반이나 부당노동행위가 확인된 기업에 대해서는 노동자의 기존 체류와 추천에 불이익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신규 수용과 정착지원 사업 참여를 제한할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사람을 부르는 데 쓴 권한은 그 사람이 부당하게 떠나지 않도록 하는 데에도 쓰여야 한다.
4) 법무부·관계부처·국회
법무부와 고용노동부 등 관계부처는 계약갱신 거절, 사용자의 추천·서류제 공 거부, 지방정부의 비자 추천 거부가 체류에 불이익을 줄 경우 그 사유가 당사자에게 서면으로 통지되고 이를 다툴 수 있도록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노동위원회·근로감독기관·법원에서 해고나 부당노동행위를 다투는 동안에는 별도의 체류자격 변경이나 임시 체류·취업 허가를 신청할 수 있게 하고, 그 심사에서 진행 중인 노동분쟁과 사용자 불이익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국회는 체류의 지속이 사용자의 일방적인 계약갱신·추천·서류제공 여부에 좌우되지 않도록 외국인고용법과 출입국관리법을 개정해야 한다. 노조활동 이후 계약갱신이 거절된 경우에는 사용자가 그 결정의 합리적 이유를 설명하도록 하고, 구제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체류와 취업의 기반이 먼저 사라지지 않도록 잠정적인 보호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노동법의 시계와 출입국 행정의 시계를 맞춰야 한다.
첫 문단의 일들이 뒤늦게나마 보이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사람이 죽었고, 영상이 나왔고, 누군가 통화를 기록해 내놓았다. 김제에서 벌어진 폭력은 그런 방식으로 보이지 않았다. 인사평가표는 공개되지 않고, 계약은 갱신 되지 않은 채 조용히 만료되며, 사람은 한 명씩 조용히 일터를 떠난다. 그 보이지 않는 폭력의 구조를 보이는 이야기로 만들기 위해, 로비로 향한 몸과 그들이 가리킨 구조를 문서로 옮겼다. 둘 다 늦기 전에 도착해야 한다. 판정은 나중에 오고, 만료일은 먼저 온다. 이 글은 첫 문단에서 타인의 삶과 죽음을 선별했다. 그 선별이 값을 하려면, 열세 명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의 이름이 다음 글의 첫 문단에 오지 않아야 한다.
참고문헌
<논문·단행본·보고서>
전희진·이주연·박지애·전아람. (2025). 전북 지역특화형 비자 사업(F-2-R)의 운영 실태 및 개선 방안 연구 용역. 전북특별자치도의회. 전북연구원 수탁연구 2025-22.
<노동조합·사건자료>
전국금속노동조합. (2026.7.29.). 이주노동자 인신매매성 각서가 왠말인가 – 현대중 우즈벡 이주노동자 '근무지 변경 시 벌금' 각서 논란에 부쳐. 성명서.
전국금속노동조합 전북지부. (2026.7.30.). 노조가입 이주노동자 비자변경연장 거부·집단해고 ㈜ 일강 부당노동행위 규탄 긴급 기자회견. 기자회견 자료.
전국금속노동조합 전북지부. (2026.8.11). 부당노동행위 중단! 부당해고 철회! 노조가입 이주노동자 비자변경·연장, 재계약 거부 ㈜일강 사무동 로비 농성 돌입. 보도자료 및 첨부자료.
전국금속노동조합 일강지회·㈜일강. (2025). 단체협약. 미공개 자료. 전남·광주이주노동자인권네트워크. (2026.08.10.). 광주 출입국·외국인사무소와 배달업체의 유착, 이주노동자 표적 단속을 강력히 규탄한다!. 성명서.
<법령·정부자료>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81조.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제25조.
「인구감소지역 지원 특별법」 제26조.
행정안전부. (연도 미상). 「고용허가제」. 정부24 외국인서비스. 2026.8.11. 접속.
찾기쉬운 생활법령정보. 「근무처(사업 또는 사업장) 변경」. 법제처. 2026.8.11. 접속.
<언론보도>
강현석. (2025.2.28). 돼지농장서 무너진 ‘코리안 드림’…20대 이주노동자 6개월 만에 사망. 경향신문.
김정훈. (2026.7.19). 울산 조선소서 20대 외국인 노동자 끼임 사고 사망. 경향신문.
박아론. (2025.8.27). ‘나주 벽돌공장 지게차 괴롭힘’ 근로자 3명 불구속 송치. 프레시안.
손가영. (2026.7.29). [단독] 울산-우즈벡-현대중공업 인력 공급 사업, ‘인신매매성’ 각서 논란. 프레시안.
이수민·안재영. (2026.8.10). [단독] 광주출입국 유착 없다더니…‘살려달라고 조공 바쳐’ 녹취. 뉴스1.
전남일보. (2025.4.29). 영암 농장서 이주노동자 비극…‘체계적 대책 마련을’. 전남일보.
뉴스플랜트. (2025.7.28.). "사업장에 묶인 채 견디라는 말인가?" 고용허가제 폐지해야. 뉴스플랜트.
/조용화 (전북노동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출처 : 전북의소리(http://www.jbsori.com)
노조에 가입하자 사라진 지금-여기 살아갈 자격
: ㈜일강 이주노동자 계약갱신 거절과 지역 '정주'의 조건
1. 회사는 당신에게 살아갈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폭력은 늘 뒤늦게 보였다. 사람이 죽고, 영상이 공개되고, 누군가 통화를 기록해 세상에 내놓은 뒤에야. 나열한다. 지난해 2월, 영암군 돼지축사에서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가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은 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말을 안 들으면 출국시킨다'는 협박이 그를 침묵하게 했다. 사장과 팀장의 상습적인 폭력과 62명분 2억 6천여만원의 체불 사실은 그가 죽고 나서야 드러났다.
지난해 7월, 벽돌 더미에 비닐테이프로 감긴 채 지게차에 매달린 사람의 영상이 공개됐다. 전남 나주의 한 벽돌공장에서 일하 던 스리랑카 출신 노동자였고, 사건 자체는 그보다 다섯 달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올해 7월 18일에는 우즈베키스탄 이주노동자 한 명이 울산의 HD현대중공업 조선소에서 일하다 사망했다. 그러고 나서야 이곳의 우즈베키스탄 노동자들이 근무지를 옮기면 매달 2,000달러를 물어야 한다는 각서에 서명해 온 사실이 알려졌다. 동료들은 고인이 여러 번 다치고 열악한 처우로 근무지를 옮기고 싶어 했으나 각서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이달 10일에는 광주 출입국·외국인사무소 직원과 배달업체 사이에 오간 통화 내용이 공개 됐다. 공개된 통화에는 단속 실적이 더 필요하면 말하라는 업체의 말과 업체의 편의를 봐주겠다는 행정의 말이 함께 등장했다. 이주노동자가 행정의 실적과 업체 편의 사이에서 표적이 되어 거래되는 장면이었다. 이 땅은 이주노동자의 삶을 거래한다. 위에 나열된 건조한 이야기 묶음의 뒷면에는 서로 다른 체류제도가 놓여 있다. 그중 가장 오랫동안, 가장 넓은 범위의 이주노동자를 사업장에 묶어온 제도, 고용허가제(E-9; 비전문취업 비 자)는 2004년부터 정부가 이주노동자를 합법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도입한 것이다.
내국인을 고용하지 못한 국내 중소기업이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게 허가하는 이 제도는 20년 넘게 허용 업종이 확대되며 '인력 수급'의 마중물이 되어 왔다. 정부24 외국인서비스 페이지는 "고용허가제를 통해 취업한 외국인근로자는 인권 보호를 기반으로 내국인과 동등한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 산업안전보건법 등 노동관계법의 적용을 받습니다"라 안내한다.
하지만 우리는 첫 문단만으로 이 땅의 고용허가제가 그런 모습이 아니란 것을 이미 확인했다. E-9 노동자는 입국 당시 계약한 사업장에서 계속 일하는 것이 원칙이며, 계약 종료·갱신거절이나 노동자의 책임이 아닌 법정 사유가 있을 때 사업장변경을 신청할 수 있다. 계약 종료 후 1개월 안에 변경을 신청하고, 신청일부터 3개월 안에 새 근무처로의 변경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 기간 안에 새 사용자를 찾지 못하면 체류를 이어가기 어렵다. 이것은 자유로운 이동권이 아니라, 사용자의 결정으로 시작되는 기한부 탈출구에 가깝다. 따라서 사장의 협박은 노동 현장에서 실재하는 권력이다. 선택지가 제거된 이주노동자는 거래된다. 이주노동자가 이 땅에 살아갈 자격은, 합리적인 제도의 외양을 두른 채 정부가 기업에 위임한 권력을 통해 관리되고 있다. 지금 김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어쩌면 첫 문단의 이야기보다 더욱 건조할 것이다.
자동차부품사인 ㈜일강 김제공장에서 2026년 5월 이후 이주노동자 열세 명이 일터를 떠났다. 회사가 근로계약을 갱신하지 않았고, 체류기간 연장과 비자 변경에 필요한 협조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근거로 제시된 것은 평가 점수였다. 점수가 낮았다는 것이다. 7월 27일 기준 노조 자료에 따르면 김제공장 이주노동자 73명 가운데 59명이 금속노조 전북지부 조합원이었다. 그리고 계약이 갱신되지 않은 열세 명 또한 모두 조합원이다. 평가자 구성이 바뀌고 갱신거절이 시작된 5월은, 일강의 이주노동자들이 이미 금속노조에 가입해 활동하기 시작한 때였다. 그리 고 회사는 "합리적이고 공정한 기준"(일강 단체협약 제33조)을 행사하며 말했다.
"당신은, 이곳에 살아갈 자격이 없다" 고백한다. 이 글은 일강의 폭력을 말하기 위해 첫 문단에 들어갈 삶과 죽음을 선별했다. 어떤 이야기들은 이 글을 시작하기 위해 이미 잘려 나갔다. 무엇이 이야기될 수 있는가. 사람들의 관심을 모아 ㈜일강의 이주노동자들이 직면한 문제를 바라보게 하려면 나 자신과 거래해야 했다. 김제에도 협박은 있었다. 금속노조 전북지부는 8월 11일 성명에서 회사가 지난해부터 이주노동자 조합원에게 탈퇴를 종용하며 "보호소로 보내버리겠다"고 협박해왔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 말은 문서로 남지 않았다. 지금 남아 있는 것은 계약 갱신 거절의 근거인 인사평가표다. 그것은 회사가 갖고 있고, 바깥에선 볼 수 없다. 사람이 사라지는 결과는 같은데 그 과정은 서류의 형태를 하고 있어 폭력으로 보이지 않는다.
삶이 거래되고 있는데도, 그렇게 보이지 않는 폭력이 이 땅에 실존한다. 그리고 이 글은 그 흐릿한 틈을 살핀다. 한편에 질문이 있다. 일강지회는 새벽 5시 로비를 점거하면서까지 무엇을 말하려 했는가? 이 글은 문단에 들어갈 타인의 삶과 죽음을 선별하면서까지 무엇을 말하려 드는가? 다른 한편에 다시 질문이 있다. 누가 회사에게 이주노동자의 생존을 결 정할 권한을 주었는가? 삶의 자격을 규정할 폭력을 묵인하는 체계와 언어는 어떻게 구현되는가?
2. 5월, 자격을 평가하는 이가 바뀌었다
일강 노사가 2025년 체결한 단체협약 제33조의 문언은 다음과 같다.
회사는이주노동자의 체류기간 연장, 비자변경 및 재계약 여부를 결정함에 있어 기능직 보임자 및 부서장의 평가가 반영된 합리적이고 공정한기준에 의한다.
문언만 놓고 보면 이 조항은 노동자를 보호하는 방향에 서 있다. 체류와 재계약이 회사의 임의 판단에 맡겨지지 않도록, 그 결정에 현장의 평가가 반영되어야 한다고 못 박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현장이란 추상적인 장소가 아니라 기능직 보임자와 부서장, 즉 이주노동자가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하는 지를 매일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노조의 투쟁을 통해 맺어진 협약은 그 사람들의 눈을 결정의 근거로 삼기로 했다.
평가제도는 이미 존재했다. 다만 그 제도의 합리성을 규정하는 건 ㈜일강이었다. 금속노조 자료에 따르면 2026년 4월까지는 노동자의 작업을 직접 지켜본 현장 보임자가 평가에 참여했고, 이주노동자의 체류기간 연장과 재계약도 정상적 으로 이루어졌다. 5월이 다가오자 달라졌다. 4월 23일 회사는 지회장을 상대로 부하직원 산재보상금 5,300만원의 구상금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5월부터 금속노조 소속 보임자가 합리적 설명없이 평가에서 배제되고 다른 노동조합 소속 관리자가 평가자로 배치됐다.
현장 반장이 높은 점수를 준 노동자도 재차 평가를 거치며 낙제 점수를 받았다. 노조는 이 두 시점이 겹친다고 보 고 있다. 같은 회사 평택공장에서는 이 평가제도 자체가 시행되지 않고, 김제공 장은 현장 인력이 약 20명 부족한 상태에서 숙련 이주노동자를 내보내며 신규 채용을 병행했다고도 노조는 밝히고 있다. 현재 자료만으로 회사의 의도와 개인별 결정의 부당성을 확정할 수는 없다. 확보된 사실관계가 주로 노조 측 자료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별 전체 평가기록과 점수 산정 기준, 현장평가가 최종결과로 바뀐 과정과 갱신 거절 사 유는 회사 밖에서 확인할 수 없다. 이것은 보이지 않는 영역이다.
금속노조 자료가 보여주는 시간순서대로라면, 일강은 이주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해 활동하자 단체협약의 "합리적이고 공정한 기준"을 이전과 다르게 적용하기 시작했다. 금속노조 전북지부는 "잇따른 이주노동자 조합원들의 계약해지 해고 통보를 규탄하며 회사에 평가 기준과 근거를 공개할 것을 수차례 요구했지만, 사측은 인사권은 전적으로 회사에 있다며 평가 기준조차 공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리고 체류와 계약의 만료일은 기다리지 않는다. 당장 8월 중 2명의 비자가 만료될 예정이다. 일강 이주노동자의 계약은 1년 단위로 갱신된다. 지금과 같은 평가와 갱신거절이 계속된다면 남은 조합원들도 매달 차례로 1~2명씩 같은 판단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일강지회는 지금-여기 살아갈 자격을 말할 문을 찾아 일강의 로비로 향했다.
아래에 정리한 것은 이번 이슈에서 중요한 의문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 안에서 일강이 답하지 않는 한 쭉 가려져 있을 의문들이기도 하다.
-이주노동자 평가자 구성을 2026년 5월부터 변경한 이유는 무엇이며, 변경의 기준과 절차는 무엇이었는가?
-작업을 직접 지휘한 현장 보임자의 평가는 최종 결정에 어떻게 반영되었으며, 반영되지 않았다면 그 근거는무엇인가?
-평택공장과 달리 김제공장에서만 이 평가제도를 시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김제공장 이주노동자의 계약갱신·체류절차에 관한 최종 결정은 어디에서, 누구에 의해 이루어 지는가?
-현장 인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숙련 노동자의 계약을 갱신하지 않고 신규채용을 진행한 이유는 무엇인가?
-갱신이 거절된 노동자가 자신의 평가 결과와 사유를 확인할 방법은 무엇인가?
-노동조합 가입 여부에 따라 갱신 결과에 차이가 없었다는 것을 회사는 어떤 자료로 설명할 수 있는가?
단체협약 제33조는 평가자료의 공개까지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 따라서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협약 위반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평가 결과 때문에 계약과 체류를 잃는 노동자가 그 평가를 볼 수도 반박 할 수도 없다면 협약이 말하는 합리적이고 공정한 기준이 실제로 작동했는지 확인할 방법 자체가 없어지고, 그 상태에서 자신이 차별받았음을 입증할 부담은 체류기간이 끝나기 전에 노동자에게 돌아온다. 협약이 보호하려던 문장은 그대로 남아 있는데, 그 문장을 인용하며 자격을 거두는 쪽도 회사다.
3. 계약 한 장에 매달린 것들
일강지회가 농성에서 내건 요구안을 보면 이 사안이 하나의 비자 절차에 관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요구안에는 계약기간 만료 후의 재계약과 재고용, 고용허가제(E-9) 노동자가 특정활동(E-7) 등으로 체류자격을 변경하려 할 때의 보장, 그 밖의 취업비자 소지자가 체류자격을 변경할 때의 절차 협조, 체류기간 만료 최소 3개월 전 출입국 연장 절차 또는 귀국 후 재입국에 필요한 서류 제공, 그리고 노동자가 원할 경우의 사직과 사업장 변경 보장이 함께 들어 있다.
요구안에는 이미 갱신이 거절된 노동자뿐 아니라 앞으로 계약·체류기간 만료와 체류자격 변경을 앞둔 조합원의 문제까지 함께 담겨 있다. 현 단계에서 이 사례 전부를 하나의 체류자격으로 묶어 설명할 수 없다. 다만 서로 다른 제도를 가로질러 반복되는 것은 사용자의 결정이나 협조가 체류의 지속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어느 절차에서는 근로계약이, 어느 절차에서는 서류 제공이나 추천이, 또 다른 절차에서는 사업장 변경의 사유를 입증하는 과정이 관문이 된다.
노동조건에 항의해야 할 상대와 체류의 지속을 좌우 하는 상대가 같은 사람이라는 것. 앞 절에서 말한 위임은 여기서 구체적인 절차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리고 계약이 끝날 때 흔들리는 것은 일자리만이 아니다. 가장 먼저 흔들 리는 것은 다툴 수 있는 시간과 조건이다. 노동위원회의 조사와 판정에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계약과 체류에는 각각의 만료일이 있다.
계약이 끝난 노동자 는 짧은 기간 안에 사업장변경이나 체류기간 연장, 다른 체류자격으로의 변경 을 시도해야 한다. 그 절차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출국하거나 자격 없는 체류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출국한다고 구제절차 자체가 곧바로 끝나는 것은 아니지만, 당사자가 현장에서 증거를 모으고 조사에 대응하며 복직을 요구할 현실적 조건은 크게 훼손된다. 노동법의 시계와 출입국 행정의 시계는 서로 맞춰져 있지 않다. 다음으로 불안정해지는 것은 가족의 자격이다. 일부 지역특화형 체류자격에 서 동반가족의 체류는 주된 체류자의 자격에 연결되어 있다.
주된 체류자의 계약과 체류가 흔들리면 가족의 체류 연장과 배우자의 취업, 현재 거주지와 자녀의 학교생활도 함께 불안정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하나의 인사결정이 한 사람의 일자리를 넘어 한 가구가 김제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흔드 는 것이다. 한국인 조합원도 계약 갱신을 거절당할 수 있고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다만 계약의 종료가 체류의 불안정으로 이어지고, 다시 다툴 현실적 조건과 가족의 생활 기반까지 흔드는 제재는 이주노동자에게만 가할 수 있다.
노동조합을 무력화하려는 의도가 체류제도를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체류의 취약성 역시 이주노동자에게 원래부터 있던 성질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가 체류의 허가와 연장을 근로계약과 사용자의 협조에 연결해두었기 때문에 생겨났고, 그렇게 만들어진 취약성은 그것을 쓸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 람에게 언제든 무기가 된다. 일강에서 벌어진 일이 그 선택의 한 사례인지는 앞으로 판정될 문제일 것 이다.
다만 살펴왔듯 평가자 교체, 현장 평가와 최종 결과의 불일치, 김제공 장에만 적용된다는 평가제도, 조합원에게 집중된 갱신 거절, 그리고 평가자료 의 독점을 함께 놓고 보면, 체류와 계약을 결정하는 권한이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차등적 불이익의 경로로 사용됐을 개연성이 있다. 그리고 최종 판정이 내려질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노동자가 먼저 이 지역에서 사라진다는 사실은, 판정을 기다릴 수 없는 이유가 된다.
4. 전북은 "열심히 일하면 당신도 정주할 수 있다"고 했다
정부는 합리적인 제도의 형태로 이주노동자의 입국을 허용해왔고, 갈수록 그 문을 넓히려 한다. 그 체계 안에서 회사가 그들의 '정주'를 결정하는 권력은 노동자를 침묵시키면서 정작 스스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방식으로 정당화된다. 제도가 알아서 굴러가는 것처럼 보이는 동안, 실제로 결정하는 자리는 시야에서 사라진다. 이 사안을 김제의 개별 사업장 분쟁으로만 볼 수 없다. 김제시는 전북의 인구감소지역 가운데 하나이며, 지역특화형 비자 사업이 전국에서 가장 활발 하게 작동해온 기초자치단체다.
전북특별자치도의회에서 발주한 연구(전희진· 이주연·박지애·전아람, 2025)에 따르면 2023년부터 2025년 7월까지 전북에서 추천된 지역특화 우수인재(F-2-R) 818명 가운데 430명, 즉 52.6%가 김제시에서 나왔다. 2025년 6월 기준으로 김제시에 체류하는 F-2-R 자격자는 330명이고 그 동반가족은 239명으로, 전북 전체 동반가족 474명의 절반을 넘는다. 전국에 있는 F-2-R 취득자의 동반가족 규모(1,878명)를 고려할 때, 8명 중 1명이 김제에 있다는 뜻이다. 지역특화 숙련기능인력(E-7-4R) 추천도 김제시가 도내에서 가장 많다. 김제시는 이들을 부르기 위해 여러 가지를 내걸었다. 지역기반 비자 취득자에게 정착지원금을 지급했고, 한국어 교육과 취업상담회와 정기 간담회를 운영했다.
홍보 자료가 앞세운 것은 배우자와 미성년 자녀를 함께 데려올 수 있고 배우자도 일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지방소멸에 대응해 사람을 불러오고, 가족 단위로 정착시키고, 인구와 경제활동을 늘린다는 설계 구조다. 앞 절에서 본 것처럼 그 가족의 자격은 주된 체류자의 자격에 매달려 있다. 오라고 말할 때 내건 조건이 떠나야 할 때는 연쇄의 경로가 된다. 일강의 피해 조합원 가운데 누가 지역특화형 체류자격을 가졌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계약갱신이 거절된 열세 명 각각의 체류자격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김제가 도내에서 지역특화형 비자가 가장 활발하게 작동해온 기초자치단체라는 사실은 계약과 체류의 중단이 개인을 넘어 가족의 정주조건까지 흔들 수 있는 지역이 어디인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다음은 설계되지 않았다. 전북도의회의 작년 연구는 이미 진단을 내려두었다. 전북의 지역특화형 비자 사업에는 전담 기관이 없고, 유입에서 정착과 사후관리에 이르는 전주기 지원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 위탁기관의 담당 인력넷이 신청 접수와 서류 검토, 추천 명단 작성, 박람회 개최까지 감당하는 구조에서 취득자에 대한 사후관리는 구조적 으로 후순위로 밀리거나 사실상 수행되지 못한다고 이 연구는 적었다.
도내에서 F-2-R 체류자가 가장 많은 김제시조차 전담 인력이 따로 없이, 새만금경 제국-투자유치과-기업지원팀의 담당 주무관 한 사람이 지역특화형 비자 업무와 함께 지능형농기계 실증단지 사업과 수출기업 지원사업 등을 겸하고 있다는 사실도 덧붙였다. 사후관리의 공백은 그냥 비어 있지 않다. 그 자리를 사업장이 채운다. 지역 특화형 비자의 추천 주체는 지방정부이고 최종 허가권은 법무부에 있다.
그러나 그 절차의 앞에는 기업과의 고용계약이 놓여 있다. 기업이 계약을 갱신하 지 않으면 지방정부의 추천과 출입국의 허가를 요청할 통로부터 좁아진다. 사후관리의 공백을 기업이 공식적으로 위임받은 것은 아니지만, 그 공백 속에서 기업의 계약 결정은 체류절차의 첫 번째 관문이 된다. 1절에서 말한 위임은 여기서 완성된다. 정주 정책의 지불되지 않은 비용은 그렇게 이주노동자의 몸 으로 옮겨간다. 지방정부의 권한이 부족하기 때문인가? 지방정부에 최종적인 체류 허가권 이 없는 것은 맞다. 그러나 아무 권한도 없는 것은 아니다.
「인구감소지역 지원 특별법」 제26조는 법무부장관이 인구감소지역을 관할하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요청하는 경우 사증 발급 절차와 체류자격의 변경, 체류기간의 연장에 관한 요건을 달리 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지역특화 우수인재의 근무처 변경 역시 사업장 휴·폐업 등으로 기존 사업장 또는 업종에서 계속 일하기 어렵고 지방자치단체의 추천을 받은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근무처 변경이 가능하다. 부를 때 쓴 권한이 지킬 때에도 쓰일 수 있는지는 시도되지 않은 채 침묵의 영역에 놓여 있다. 불과 넉 달 전, 고용노동부 익산지청의 개입 속에서 회사는 지회장을 상대로 제기한 구상금 소송을 취하한 전례가 있다.
하지만 금속노조 전북지부는 7월 30일 익산지청장을 면담한 자리에서 현행법상 사용자가 하지 않겠다고 하면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취지의 답을 들었다고 전한다. 고용노동부의 권한 안에서는 그 말이 맞을 수 있다. 다만 제도 전체를 놓고 보면 아직 쓰이지 않은 권한이 남아 있고, 그것을 쓸 주체가 정해지지 않았을 뿐이다. 그 사이 열세 명이 떠나고 두 사람의 만료일이 다가온다. 그리고 현재 확보한 자료에서는 김제시와 전북특별자치도가 이 사안에 개입하거나 공식 입장을 밝힌 사실을 확인하지 못했다.
5. 삶의 자격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땅으로
8월 11일 새벽 다섯 시 일강의 로비에 들어간 것은 갱신이 거절된 이주노동자들만이 아니다. 지회장과 사무장, 대의원이 먼저 농성에 들어갔고, 출입문이 봉쇄되자 일강지회 조합원들이 사무동 앞에 모였다. 이주노동자 조합원의 계약과 체류를 지키는 일이 지회 전체의 투쟁이 되었다. 이 장면을 노동조합의 당연한 모습으로 기록해서는 안 된다. 노동조합이 언제나 체류자격이 다른 노동자들을 같은 조합원으로 대했던 것은 아니다.
이주노동자를 함께 조직해야 할 동료가 아니라 내국인의 일자리와 임금을 위협하는 외부의 노동력으로 바라본 시간도 있었다. 그러므로 일강지회의 공동투쟁은 노동조합이 본래 선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 아니다. 이 사업장에서 그 것이 가능해진 조건을 따로 물어야 한다. 7월 27일 기준 노조 자료에 따르면 김제공장 이주노동자 73명 가운데 59명이 금속노조 조합원이었고, 이들은 지회의 주변에 잠시 머물다 떠나는 사람 들이 아니었다.
함께 노동조합을 만들고, 교섭하고, 같은 현장에서 일해온 조합원이었다. 계약 만료 때마다 누군가 떠나는 것은 곧 지회의 조합원이, 매일 마주하던 동료가 사라지는 일이었다. 체류자격을 이용해 노동자를 나누는 일이 반복된다면 그다음에는 어떤 권한으로 누구에게 불이익이 향할지도 알 수 없다. 어쩌면 그것이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이것만으로 일강의 새벽을 모두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체류자격의 차이가 분리의 선이 아닌 공동투쟁의 이유가 된 과정은 그 곁을 다시 살필 시간이 있어야만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지금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분명 하다. 일강지회는 개인별 비자 문제로 처리될 수 있었던 일을 노동조합 전체의 고용과 단결권 문제로 바꾸어놓았다. 그러나 이것이 사건에 그친다면, 노동자가 자신의 체류와 고용을, 나아가 지금-여기 살아갈 자격을 지키기 위해 매번 로비를 점거해야 한다면 제도와 행정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다음의 '자격 만료'가 오기 전, 이곳의 주체들이 해야 할 일이 있다. 첫 문단 의 삶과 죽음, 그리고 침묵 곁에 나열한다.
1) ㈜일강
일강은 이미 이루어진 계약갱신 거절을 철회하고, 일터를 떠난 노동자에 대해서는 재고용 절차를, 만료를 앞둔 노동자에 대해서는 기존 계약의 갱신 절차를 즉시 개시해야 한다. 평가기준과 절차를 바로잡고 추가적인 갱신거절을 중단해야 한다. 평가기준과 평가절차, 평가자 구성을 노동조합과 당사자에게 공개하고, 개인별 평가기록과 결정 사유는 해당 당사자에게 제공해야 한다. 단체협약 제33조에 따라 현장 보임자와 부서장의 평가가 실제로 반영되는 절차를 복원하고, 당사자의 체류자격에 따라 필요한 기간연장·자격변경·사업장 변경 절차와 서류 제공에 협조해야 한다. 사무동 출입 봉쇄를 비롯한 노동조합 활동 방해와 추가적인 불이익 조치를 중단해야 한다. 무엇보다 그에 앞서 노사면담에 성실히 임하고 형사고소 방침을 철회해야 할 것이다.
2) 고용노동부 익산지청
고용노동부 익산지청은 평가자 변경과 금속노조 조합원에게 집중된 갱신거절이 노조법상 불이익취급과 지배·개입에 해당하는지 즉시 수사하고, 수시감독 또는 특별감독에 착수해야 한다. 회사가 보유한 평가기록과 인사자료를 신속히 확보해 관련 자료가 변경되거나 폐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노동위원회의 판정에는 시간이 걸리고 체류와 계약에는 만료일이 있다. 익산 지청은 8월 중 체류기간 만료 예정자 2명에 대해 관할 출입국·외국인관서 및 김제시·전북특별자치도와 긴급협의를 열고, 당사자가 체류 심사에 제출할 수 있도록, 익산지청에 접수된 사건과 조사 진행 사실을 확인하는 자료를 제공해야 한다. 7월 30일 지청장 면담에서 밝힌 검토·조치 계획과 그 이행 경과도 공개해야 한다.
3) 김제시와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와 전북특별자치도는 우선 피해 노동자와 만료 예정자의 체류자격, 지역특화형 비자 추천 여부와 만료일을 확인하고 이를 전담할 담당자를 지정해야 한다. 지역특화형 비자에 해당하는 노동자에게는 지자체 추천을 통한 근무처 변경이나 체류 유지의 경로가 있는지 즉시 검토하고, 적용이 어렵다면 「인구감소지역 지원 특별법」 제26조에 근거해 노동분쟁 중인 이주노동자를 위한 체류 특례를 법무부에 공식 요청하고, 근무처 변경을 지원할 방안도 함께 협의해야 한다.
지역특화형 비자 취득자뿐 아니라 지역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가 계약·체 류·노동권 문제를 함께 상담하고 조정받을 수 있는 사후관리 창구를 설치해야 한다. 향후 지역특화형 비자 참여기업과 신규 수용기업을 심사할 때에는 임금 체불·산업안전·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차별과 계약갱신 절차를 점검해야 한다. 노동관계법 위반이나 부당노동행위가 확인된 기업에 대해서는 노동자의 기존 체류와 추천에 불이익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신규 수용과 정착지원 사업 참여를 제한할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사람을 부르는 데 쓴 권한은 그 사람이 부당하게 떠나지 않도록 하는 데에도 쓰여야 한다.
4) 법무부·관계부처·국회
법무부와 고용노동부 등 관계부처는 계약갱신 거절, 사용자의 추천·서류제 공 거부, 지방정부의 비자 추천 거부가 체류에 불이익을 줄 경우 그 사유가 당사자에게 서면으로 통지되고 이를 다툴 수 있도록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노동위원회·근로감독기관·법원에서 해고나 부당노동행위를 다투는 동안에는 별도의 체류자격 변경이나 임시 체류·취업 허가를 신청할 수 있게 하고, 그 심사에서 진행 중인 노동분쟁과 사용자 불이익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국회는 체류의 지속이 사용자의 일방적인 계약갱신·추천·서류제공 여부에 좌우되지 않도록 외국인고용법과 출입국관리법을 개정해야 한다. 노조활동 이후 계약갱신이 거절된 경우에는 사용자가 그 결정의 합리적 이유를 설명하도록 하고, 구제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체류와 취업의 기반이 먼저 사라지지 않도록 잠정적인 보호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노동법의 시계와 출입국 행정의 시계를 맞춰야 한다.
첫 문단의 일들이 뒤늦게나마 보이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사람이 죽었고, 영상이 나왔고, 누군가 통화를 기록해 내놓았다. 김제에서 벌어진 폭력은 그런 방식으로 보이지 않았다. 인사평가표는 공개되지 않고, 계약은 갱신 되지 않은 채 조용히 만료되며, 사람은 한 명씩 조용히 일터를 떠난다. 그 보이지 않는 폭력의 구조를 보이는 이야기로 만들기 위해, 로비로 향한 몸과 그들이 가리킨 구조를 문서로 옮겼다. 둘 다 늦기 전에 도착해야 한다. 판정은 나중에 오고, 만료일은 먼저 온다. 이 글은 첫 문단에서 타인의 삶과 죽음을 선별했다. 그 선별이 값을 하려면, 열세 명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의 이름이 다음 글의 첫 문단에 오지 않아야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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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희진·이주연·박지애·전아람. (2025). 전북 지역특화형 비자 사업(F-2-R)의 운영 실태 및 개선 방안 연구 용역. 전북특별자치도의회. 전북연구원 수탁연구 2025-22.
<노동조합·사건자료>
전국금속노동조합. (2026.7.29.). 이주노동자 인신매매성 각서가 왠말인가 – 현대중 우즈벡 이주노동자 '근무지 변경 시 벌금' 각서 논란에 부쳐. 성명서.
전국금속노동조합 전북지부. (2026.7.30.). 노조가입 이주노동자 비자변경연장 거부·집단해고 ㈜ 일강 부당노동행위 규탄 긴급 기자회견. 기자회견 자료.
전국금속노동조합 전북지부. (2026.8.11). 부당노동행위 중단! 부당해고 철회! 노조가입 이주노동자 비자변경·연장, 재계약 거부 ㈜일강 사무동 로비 농성 돌입. 보도자료 및 첨부자료.
전국금속노동조합 일강지회·㈜일강. (2025). 단체협약. 미공개 자료. 전남·광주이주노동자인권네트워크. (2026.08.10.). 광주 출입국·외국인사무소와 배달업체의 유착, 이주노동자 표적 단속을 강력히 규탄한다!. 성명서.
<법령·정부자료>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81조.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제25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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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안전부. (연도 미상). 「고용허가제」. 정부24 외국인서비스. 2026.8.11. 접속.
찾기쉬운 생활법령정보. 「근무처(사업 또는 사업장) 변경」. 법제처. 2026.8.11. 접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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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석. (2025.2.28). 돼지농장서 무너진 ‘코리안 드림’…20대 이주노동자 6개월 만에 사망. 경향신문.
김정훈. (2026.7.19). 울산 조선소서 20대 외국인 노동자 끼임 사고 사망. 경향신문.
박아론. (2025.8.27). ‘나주 벽돌공장 지게차 괴롭힘’ 근로자 3명 불구속 송치. 프레시안.
손가영. (2026.7.29). [단독] 울산-우즈벡-현대중공업 인력 공급 사업, ‘인신매매성’ 각서 논란. 프레시안.
이수민·안재영. (2026.8.10). [단독] 광주출입국 유착 없다더니…‘살려달라고 조공 바쳐’ 녹취. 뉴스1.
전남일보. (2025.4.29). 영암 농장서 이주노동자 비극…‘체계적 대책 마련을’. 전남일보.
뉴스플랜트. (2025.7.28.). "사업장에 묶인 채 견디라는 말인가?" 고용허가제 폐지해야. 뉴스플랜트.
/조용화 (전북노동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출처 : 전북의소리(http://www.jbsor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