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진일 충남노동건강인권센터 대표(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
지난 4일 한국일보에는 “물류센터 근로자 처우 개선 권고 ‘퇴짜’ … 몰인정한 정부”라는 기사가 실렸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과로와 폭염에 노출된 물류센터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화재 취약성, 냉·온열질환, 야간노동, 쉴 권리 등에 대한 권고를 했지만 관계부처들이 대부분 ‘불수용’했다는 내용이었다. 폭염일 경우 매시간 휴게시간을 부여하고 사업장별 위험성평가를 위한 방안을 마련하라는 권고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폭염 상황은 사업장 작업환경 등에 따라 건강위험 정도가 다를 수 있어 휴게시간 부여 및 냉방장치 설치를 일률적으로 법으로 규정하긴 어렵다”는 답변으로 갈음했다. 여러 권고 중 받아들여진 것은 표준계약서에 휴가 및 휴일을 명시하는 것뿐이라고 하니 정부의 ‘인정머리 없음’을 개탄할 만하지만, 고용노동부의 입장은 다른 의미에서 실망스럽다. 2년째 스스로 강조하고 있는 ‘자기규율예방체계’에 대한 고민 부족의 일면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작업환경이 사업장마다 다르고 그에 따른 위험의 성격과 정도도 다르기 때문에 위험에 대한 관리방안을 일률적으로 적용하기 어렵다. 그래서 사업주들이 각자의 조건과 환경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 ‘자기규율예방체계’ 도입의 핵심적인 이유이자 비전이었다. 그렇다면 폭염 상황에 대한 자기규율은 노동부의 답변처럼 일률적으로 규정하기 어려우니 ‘사업장이 알아서 하면 되는 일’인가? 그럼 자기규율예방체계의 정착을 위한 노동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위험성평가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뻔한 총론을 넘어 눈앞의 폭염대책이라는 눈앞의 문제에 비춰 살펴보자.
첫째, 사업주의 의무 규정을 포괄적으로 정비해야 한다. 세부적인 기준이나 기술적인 관리방안은 권고수준이나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할 수도 있지만 사업주가 온열질환에 대한 대책을 수립하고 이행해야 한다는 의무만큼은 명시돼야 한다. 현재의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는 용광로 작업 등 12가지 작업만을 고열작업으로 규정하고 온도관리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매년 발표되는 온열질환 예방 가이드의 내용이 아무리 업데이트돼도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는 근본적인 원인은 여기에 있다. 자기규율은 규율 여부를 자율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위험을 관리할 것인지를 자율에 맡기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사업주의 의무는 오히려 포괄적으로 규정돼야 한다. 포괄적 의무규정이 과도한 규제라는 낡은 관념과 두려움을 벗어나지 못하면 자기규율예방체계를 완성할 수 없다.
둘째, 다양한 작업환경에서 위험을 평가하고 관리할 방법을 제공해야 한다. 올해의 온열질환 예방 가이드 및 자율점검표는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실내작업에 대해 실시간으로 온습도를 반영하도록 했고, 작업중지권이 반영됐다. 하지만 노동부의 말처럼 사업장마다 천차만별인 작업환경에 대해 체감온도라는 기준만으로 관리한다는 것이야말로 일률적인 접근이 아닐까? 어쩌면 물류센터 노동자들에게 가장 시급한 폭염대책은 냉방장치 이전에 살인적인 노동강도의 완화일지도 모를 일이다. 일례로 영국의 산업안전보건청(HSE)은 열스트레스 위험성을 평가하는 체크리스트를 제공하는데, 이것은 기온, 복사열, 환기수준, 습도, 작업복, 노동강도, 개인보호구 등의 요소들을 간단하게 점수화해서 평가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다양한 원인들을 검토해야 대책도 다양하게 검토될 수 있다.
자기규율예방체계의 마지막 조각은 ‘결과 책임(고의나 과실이 없더라도 손해의 결과에 책임을 지는 일)’에 대한 강력하고 지속적인 메시지다. 사업주가 합리적인 의무를 다하지 않아 발생하는 중대재해에 대해 엄중한 책임이 있음을 노동부도, 사법부도 일관되게 보여줘야 한다. 온열질환으로 인한 사망 역시 분명히 여기에 해당된다는 점 또한 강조돼야 할 것이다. 6월9일 기준 온열질환 감시체계에 기록된 환자는 72명이며, 발생장소를 기준으로 보면 이 중 30명(일반작업장 14명, 농업작업장 16명)이 노동자로 추정된다. 역대급 폭염이 예고된 올해 부디 모두가 안녕하기를 바란다.
폭염과 자기규율예방체계
최진일 충남노동건강인권센터 대표(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
지난 4일 한국일보에는 “물류센터 근로자 처우 개선 권고 ‘퇴짜’ … 몰인정한 정부”라는 기사가 실렸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과로와 폭염에 노출된 물류센터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화재 취약성, 냉·온열질환, 야간노동, 쉴 권리 등에 대한 권고를 했지만 관계부처들이 대부분 ‘불수용’했다는 내용이었다. 폭염일 경우 매시간 휴게시간을 부여하고 사업장별 위험성평가를 위한 방안을 마련하라는 권고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폭염 상황은 사업장 작업환경 등에 따라 건강위험 정도가 다를 수 있어 휴게시간 부여 및 냉방장치 설치를 일률적으로 법으로 규정하긴 어렵다”는 답변으로 갈음했다. 여러 권고 중 받아들여진 것은 표준계약서에 휴가 및 휴일을 명시하는 것뿐이라고 하니 정부의 ‘인정머리 없음’을 개탄할 만하지만, 고용노동부의 입장은 다른 의미에서 실망스럽다. 2년째 스스로 강조하고 있는 ‘자기규율예방체계’에 대한 고민 부족의 일면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작업환경이 사업장마다 다르고 그에 따른 위험의 성격과 정도도 다르기 때문에 위험에 대한 관리방안을 일률적으로 적용하기 어렵다. 그래서 사업주들이 각자의 조건과 환경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 ‘자기규율예방체계’ 도입의 핵심적인 이유이자 비전이었다. 그렇다면 폭염 상황에 대한 자기규율은 노동부의 답변처럼 일률적으로 규정하기 어려우니 ‘사업장이 알아서 하면 되는 일’인가? 그럼 자기규율예방체계의 정착을 위한 노동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위험성평가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뻔한 총론을 넘어 눈앞의 폭염대책이라는 눈앞의 문제에 비춰 살펴보자.
첫째, 사업주의 의무 규정을 포괄적으로 정비해야 한다. 세부적인 기준이나 기술적인 관리방안은 권고수준이나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할 수도 있지만 사업주가 온열질환에 대한 대책을 수립하고 이행해야 한다는 의무만큼은 명시돼야 한다. 현재의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는 용광로 작업 등 12가지 작업만을 고열작업으로 규정하고 온도관리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매년 발표되는 온열질환 예방 가이드의 내용이 아무리 업데이트돼도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는 근본적인 원인은 여기에 있다. 자기규율은 규율 여부를 자율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위험을 관리할 것인지를 자율에 맡기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사업주의 의무는 오히려 포괄적으로 규정돼야 한다. 포괄적 의무규정이 과도한 규제라는 낡은 관념과 두려움을 벗어나지 못하면 자기규율예방체계를 완성할 수 없다.
둘째, 다양한 작업환경에서 위험을 평가하고 관리할 방법을 제공해야 한다. 올해의 온열질환 예방 가이드 및 자율점검표는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실내작업에 대해 실시간으로 온습도를 반영하도록 했고, 작업중지권이 반영됐다. 하지만 노동부의 말처럼 사업장마다 천차만별인 작업환경에 대해 체감온도라는 기준만으로 관리한다는 것이야말로 일률적인 접근이 아닐까? 어쩌면 물류센터 노동자들에게 가장 시급한 폭염대책은 냉방장치 이전에 살인적인 노동강도의 완화일지도 모를 일이다. 일례로 영국의 산업안전보건청(HSE)은 열스트레스 위험성을 평가하는 체크리스트를 제공하는데, 이것은 기온, 복사열, 환기수준, 습도, 작업복, 노동강도, 개인보호구 등의 요소들을 간단하게 점수화해서 평가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다양한 원인들을 검토해야 대책도 다양하게 검토될 수 있다.
자기규율예방체계의 마지막 조각은 ‘결과 책임(고의나 과실이 없더라도 손해의 결과에 책임을 지는 일)’에 대한 강력하고 지속적인 메시지다. 사업주가 합리적인 의무를 다하지 않아 발생하는 중대재해에 대해 엄중한 책임이 있음을 노동부도, 사법부도 일관되게 보여줘야 한다. 온열질환으로 인한 사망 역시 분명히 여기에 해당된다는 점 또한 강조돼야 할 것이다. 6월9일 기준 온열질환 감시체계에 기록된 환자는 72명이며, 발생장소를 기준으로 보면 이 중 30명(일반작업장 14명, 농업작업장 16명)이 노동자로 추정된다. 역대급 폭염이 예고된 올해 부디 모두가 안녕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