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상승률 반영 안 된 최저임금 두고
저임금 노동자들 "처참하고 비참하다"
최저임금 결정 과정서 매번 외면당해
"정부 주도하는 결정 구조 뜯어고쳐야"
2025년도 최저임금이 1만 30원으로 결정됐다. 1만 원 문턱을 넘었지만 2년 연속 물가상승률에 못 미치며 ‘실질임금 하락’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최저임금이 곧 월급인 이들은 이번 결정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시급 1만 원 남짓한 돈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수입과 지출을 따져봤다.
‘기본급 201만 2820원.’ 창원지역 한 방산업체에 36년 몸담은 생산직 노동자 ㄱ(59) 씨가 받아든 지난 6월 급여 지급명세서에 찍힌 금액이다. 시급으로 치면 9866원으로 올해 최저임금(9860원)과 거의 같은 수준이다. 각종 세금을 제한 실수령액은 153만 3835원까지 떨어진다. 임금피크제로 5% 삭감된 돈이라지만 4인 가구를 꾸려가기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상여금으로 겨우 생활할 수 있다.
“기본급이 계속 동결되다 보니 어느새 최저임금에 따라잡혔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은 최저임금이 곧 월급인 셈인데 물가상승률만큼도 안 올랐다는 뉴스를 보고 비참했지요. 36년 일하고도 최저임금이라는 사실도 슬프고요.”
배우자 몫까지 합하면 ㄱ 씨 가구가 한 달에 버는 수입은 500만 원 정도. 여기에 아파트 관리비 25만 원, 보험료 30만 원, 자동차 유류비 20만 원, 집 대출 이자 66만 원 등 매달 약 150만 원이 고정비로 빠져나간다. 식비부터 각종 경조사비, 양가 부모님 용돈 등까지 제하면 늘 빠듯하다.
최근 자녀가 취직하며 그나마 상황이 나아졌다. 두 살 터울 아이들이 대학에 다니던 때까지만 해도 늘 돈에 쩔쩔매며 살아야 했다. 겨우 한숨 돌리는가 싶었지만 어느새 정년퇴직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내년을 끝으로 퇴직하는 그는 국민연금을 받는 63세까지 별다른 수입 없이 지내야 한다. 노후 준비를 하지 못한 까닭에 퇴직 이후에도 일자리를 알아봐야 하는 처지다.
“한창 돈을 벌 때는 아이들 뒷바라지하느라 노후 준비고 뭐고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노후가 걱정되기는 하나 어쩔 방법이 있나요. 적당한 일자리를 알아봐야겠지요.”
지난 5월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모두를 위한 최저임금 운동본부' 출범 기자회견에서 한국노총 류기섭 사무총장(왼쪽)과 민주노총 이미선 부위원장이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양대노총과 시민단체가 모여 출범한 '모두를 위한 최저임금 운동본부'는 실질임금 하락으로 저임금 노동자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다며 최저임금 현실화를 주장했다. /연합뉴스
최저 시급을 받는 13년 차 노인생활관리사 박은영(49·창원시 마산회원구) 씨도 비슷한 처지다. 매일 5시간씩 일하고 받는 기본급은 128만 5750원이다. 각종 세금을 제한 실수령액은 114만 1490원이다. 그의 시급은 13년 동안 단 한 번도 최저임금보다 높았던 적이 없다.
배우자 몫까지 합치면 박 씨 가구 수입은 600만 원이 조금 넘는다. 하지만 대학생 자녀가 대전에서 자취해 나가는 돈이 더 많다. 아이들 밑에만 매달 300만 원 가까이 들어간다. 그는 부족한 벌이를 메우고자 노인생활관리사 일이 끝나는 오후 3시 이후에도 독서실 관리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다.
박 씨는 “최근에 보험도 해지했다. 아이들이 취직할 때까지는 덜 쓰면서 버틸 수밖에 없다”며 “해외여행은 꿈도 못 꾸고 제 옷 사 입어 본 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사천지역 한 항공제조 업체에서 2년 째 일하는 ㄴ(26) 씨는 기본급이 214만 2400원이다. 시급 1만 500원을 받는데 별도 상여금이나 성과급은 없다. 최소한 일상을 유지하려면 잔업과 특근은 필수다. 오전 8시에 출근해 오후 7시 30분 퇴근하는 게 일상인 ㄴ 씨에게 결혼은 사치처럼 느껴진다.
ㄴ 씨는 “결혼하려면 적어도 안정적인 직장과 집이 있어야 할 텐데 지금은 둘 다 충족을 못 하니 답답하다”면서 “항공 쪽 임금이 이렇게 열악한 줄 몰랐는데, 더 늦기 전에 임금과 고용이 안정적인 쪽으로 이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중희 거제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 사무국장은 “하청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은 사실상 최고임금이 돼버린 상황인데 물가상승률만큼도 오르지 않았으니 참담한 마음일 것”이라며 “최저임금 결정 구조를 정부에 맡겨둘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영향을 받는 이들이 목소리 낼 수 있게끔 뜯어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최저임금이 곧 최고임금인 노동자들 "여행·쇼핑 꿈도 못 꿔"
물가상승률 반영 안 된 최저임금 두고
저임금 노동자들 "처참하고 비참하다"
최저임금 결정 과정서 매번 외면당해
"정부 주도하는 결정 구조 뜯어고쳐야"
2025년도 최저임금이 1만 30원으로 결정됐다. 1만 원 문턱을 넘었지만 2년 연속 물가상승률에 못 미치며 ‘실질임금 하락’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최저임금이 곧 월급인 이들은 이번 결정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시급 1만 원 남짓한 돈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수입과 지출을 따져봤다.
‘기본급 201만 2820원.’ 창원지역 한 방산업체에 36년 몸담은 생산직 노동자 ㄱ(59) 씨가 받아든 지난 6월 급여 지급명세서에 찍힌 금액이다. 시급으로 치면 9866원으로 올해 최저임금(9860원)과 거의 같은 수준이다. 각종 세금을 제한 실수령액은 153만 3835원까지 떨어진다. 임금피크제로 5% 삭감된 돈이라지만 4인 가구를 꾸려가기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상여금으로 겨우 생활할 수 있다.
“기본급이 계속 동결되다 보니 어느새 최저임금에 따라잡혔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은 최저임금이 곧 월급인 셈인데 물가상승률만큼도 안 올랐다는 뉴스를 보고 비참했지요. 36년 일하고도 최저임금이라는 사실도 슬프고요.”
배우자 몫까지 합하면 ㄱ 씨 가구가 한 달에 버는 수입은 500만 원 정도. 여기에 아파트 관리비 25만 원, 보험료 30만 원, 자동차 유류비 20만 원, 집 대출 이자 66만 원 등 매달 약 150만 원이 고정비로 빠져나간다. 식비부터 각종 경조사비, 양가 부모님 용돈 등까지 제하면 늘 빠듯하다.
최근 자녀가 취직하며 그나마 상황이 나아졌다. 두 살 터울 아이들이 대학에 다니던 때까지만 해도 늘 돈에 쩔쩔매며 살아야 했다. 겨우 한숨 돌리는가 싶었지만 어느새 정년퇴직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내년을 끝으로 퇴직하는 그는 국민연금을 받는 63세까지 별다른 수입 없이 지내야 한다. 노후 준비를 하지 못한 까닭에 퇴직 이후에도 일자리를 알아봐야 하는 처지다.
“한창 돈을 벌 때는 아이들 뒷바라지하느라 노후 준비고 뭐고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노후가 걱정되기는 하나 어쩔 방법이 있나요. 적당한 일자리를 알아봐야겠지요.”
최저 시급을 받는 13년 차 노인생활관리사 박은영(49·창원시 마산회원구) 씨도 비슷한 처지다. 매일 5시간씩 일하고 받는 기본급은 128만 5750원이다. 각종 세금을 제한 실수령액은 114만 1490원이다. 그의 시급은 13년 동안 단 한 번도 최저임금보다 높았던 적이 없다.
배우자 몫까지 합치면 박 씨 가구 수입은 600만 원이 조금 넘는다. 하지만 대학생 자녀가 대전에서 자취해 나가는 돈이 더 많다. 아이들 밑에만 매달 300만 원 가까이 들어간다. 그는 부족한 벌이를 메우고자 노인생활관리사 일이 끝나는 오후 3시 이후에도 독서실 관리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다.
박 씨는 “최근에 보험도 해지했다. 아이들이 취직할 때까지는 덜 쓰면서 버틸 수밖에 없다”며 “해외여행은 꿈도 못 꾸고 제 옷 사 입어 본 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사천지역 한 항공제조 업체에서 2년 째 일하는 ㄴ(26) 씨는 기본급이 214만 2400원이다. 시급 1만 500원을 받는데 별도 상여금이나 성과급은 없다. 최소한 일상을 유지하려면 잔업과 특근은 필수다. 오전 8시에 출근해 오후 7시 30분 퇴근하는 게 일상인 ㄴ 씨에게 결혼은 사치처럼 느껴진다.
ㄴ 씨는 “결혼하려면 적어도 안정적인 직장과 집이 있어야 할 텐데 지금은 둘 다 충족을 못 하니 답답하다”면서 “항공 쪽 임금이 이렇게 열악한 줄 몰랐는데, 더 늦기 전에 임금과 고용이 안정적인 쪽으로 이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중희 거제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 사무국장은 “하청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은 사실상 최고임금이 돼버린 상황인데 물가상승률만큼도 오르지 않았으니 참담한 마음일 것”이라며 “최저임금 결정 구조를 정부에 맡겨둘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영향을 받는 이들이 목소리 낼 수 있게끔 뜯어고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