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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ILO 플랫폼협약이 사법부에 던지는 과제

관리자
2026-07-06
조회수 500

ILO 플랫폼협약이 사법부에 던지는 과제


전다운 변호사(법무법인 지향)



▲ 전다운 변호사(법무법인 지향)

지난 12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노동기구(ILO) 114차 총회에서 국제 노동사에 획을 그을 중대한 결정이 내려졌다. 2년간 총회에서 이어진 치열한 논의 끝에 ‘플랫폼 경제에서 양질의 노동에 관한 협약’(193호 협약)이 찬성 406표, 반대 8표로 채택된 것이다. 이는 ILO 역사상 보기 드문 압도적 지지다. 플랫폼 노동자 대다수가 자영인이므로 규제가 불필요하다는 사용자그룹의 반대 논리를 극복하고 미국과 일본을 제외한 대다수 회원국 정부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어냈다. 이번 협약은 디지털 전환에 따른 급격한 일의 세계 변화 속에서 발생한 규범적 공백을 메우기 위해 국제사회가 고심해 온 산물이며, 동시에 갈수록 집단적 노사갈등이 격화되는 한국 사회에서 사법부와 입법부, 정부가 나아가야 할 보편적 기준을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시사점이 묵직하다.

플랫폼노동협약의 핵심적 가치는 계약의 형식이나 고용상 지위 분류와 관계없이 모든 형태의 노동자에게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보편성 선언에 있다. 협약은 ‘디지털 플랫폼 노동자’를 국내법상 고용관계에 있는 근로자(employee)인지 아닌지, 혹은 공식·비공식 경제에 속해 있는지를 불문하고 보수를 목적으로 노무를 제공하는 모든 사람으로 매우 폭넓게 정의했다. 이는 국내 노동법체계가 ‘근로자’라는 협소한 법적 틀에 갇혀 플랫폼 노동자나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비공식노동자 등을 노동법 사각지대에 방치하거나 제3의 회색지대를 만들어 차별적으로 취급해 온 관행에 일침을 가하는 것이다. 국제사회가 채택한 이번 협약은 설령 국내법상 ‘노무제공자’나 ‘자영인’등의 이름으로 취급돼 왔더라도 결사의 자유, 단체교섭권, 노동안전보건 등 기본적인 노동기본권만큼은 동등하고 실효적으로 보장받아야 한다는 준엄한 원칙을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이다.

플랫폼노동협약이 규정하는 ‘중간업체(intermediary)’에 대한 책임 배분 조항은 현재 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하청노동자와 원청회사 간의 단체교섭이나 파업 등의 갈등을 해결할 시사점을 제공한다. 협약은 원청 플랫폼과 노동자 사이의 하청 사슬(subcontracting chain)의 일부로서 노무제공을 가능하게 하는 주체를 ‘중간업체’로 정의하고, 회원당국(행정부·입법부·사법부 모두 포함)은 그러한 중간업체가 개입하는 경우에도 하청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이 공백 없이 보장될 수 있도록 원청과 중간업체가 부담해야 할 각각의 책임을 결정하고 배분해야 할 책무를 명시했다. 이는 원청이 ‘중간업체’를 이용하는 ‘책임의 외주화’를 금지하는 것이며, 계약서상의 형식적 당사자가 누구든 간에 실질적으로 노무를 조직하고 통제해 이익을 누리는 원청 사용자가 노동권 보장의 최종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동안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면서도 하청교섭을 완강히 거부해 파업을 유발하고 노사갈등을 키운 한국 산업현장의 해묵은 난제를 풀기 위해서도 한국 사회 역시 반드시 준수해야 할 국제노동기준상의 원칙이다.

이번 ILO 총회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국제사회의 압도적인 지지와 달리 그동안 한국 정부가 협약 성립 과정에서 보여준 소극적이고 비협조적인 태도는 국제사회에서의 국가적 위상과 책임에 결코 부합하지 않는다. 한국 정부는 2024년 ILO의 국제노동기준 수립 설문조사에서 공식적으로 반대 의견을 표명했을 뿐만 아니라, 2025년 협약·권고 초안에 관한 설문조사에는 아예 답변조차 하지 않았다. 소위 ‘일하는 사람 기본법’을 통해 플랫폼 노동자를 비롯해 모든 일하는 사람을 보호하겠다는 정부의 공약과 상치되는 이러한 행보는 대단히 납득하기 어렵다. 정부와 국회는 이번 협약 채택을 계기로 신속히 193호 협약의 비준 절차를 밟아야 하며, 플랫폼 노동자는 물론 다단계 하청구조 아래 고통받는 모든 노동자가 차별 없이 결사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누릴 수 있도록 적극적인 입법 조치에 나서야 할 것이다.

법원 역시 이처럼 확립된 국제노동기준에 입각해 헌법상 노동3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전향적 해석에 나서야 하고, 복잡한 산업구조와 계약관계 뒤에 숨은 노동자의 실질적인 ‘사용자’를 외면해 온 판결들을 재고해야 한다. 이번 협약은 노동자의 고용상 지위를 분류할 때 계약서상의 명칭이 아니라 ‘노무제공 및 보수와 관계된 사실들’을 주로 살펴야 한다는 ‘사실우선의 원칙(primacy of facts)’을 명시하고 있다. 알고리즘과 인공지능(AI), 그리고 고도로 다변화된 하청구조 속에서 자본의 통제 방식이 날로 교묘해진다면, 법의 해석 역시 노동의 실질을 포착할 수 있도록 진화해야 마땅하다. 사법부가 낡은 형식주의의 장벽을 깨고 ‘진짜사장’에게 교섭과 책임의 의무를 부과할 때, 비로소 우리 사회의 노사갈등을 평화로운 대화와 타협의 장으로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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