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옵티칼하이테크 노조, 고용승계 요구하며 투쟁... 고공농성 돌입한 이들과 연대자들의 이야기
[이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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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공농성장에서 투쟁을 외치는 소현숙 조직2부장과 박정혜 수석부지회장 고공농성장에서 소현숙 조직2부장(왼)과 박정혜 수석부지회장(오른)이 투쟁을 외치고 있다. |
ⓒ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
경상북도 구미시 4공단엔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이 있다. 20년간 총매출액이 7조 7천억원 가량이며 노동자 최대 인원 약 700명, 1만 2천평 부지에 세워진 큰 공장이다. 2022년 10월 4일, 공장에 불이 났고 회사는 화재보험금으로 1300억을 받았다. 공장을 재건하는 비용의 약 2배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그러나 한 달 후 회사는 청산을 선언하며 노동자 전원에게 희망퇴직서를 내밀었다.
이를 거부한 11명의 노동자가 불탄 공장을 지키며 싸우고 있다. 이들은 평택에 위치한 쌍둥이 회사로 고용승계하길 요구하고 있다. 사측은 노동조합의 요구를 거부하며 청산의 마무리 절차로 불탄 공장을 철거하려 하고 있다.
결국 2024년 1월 8일, 두 여성 조합원이 공장 옥상으로 올라갔다. '고용승계 없이 공장철거 없습니다'라며 고공농성을 시작한 것이다. 수많은 언론이 마이크를 들이밀었고 촬영을 위해 드론도 띄웠다. 언론은 노사 갈등, 투쟁 계획 등에 대해 많이 물었다. 그러나 고공농성자가 아래에 있는 동지들을 생각하는 마음, 아래에서 고공농성자를 향한 애타는 마음을 취재한 곳은 없었다. 특히 옵티칼 노동조합은 KEC 지회와 아사히비정규지회에게 많은 연대를 받고 있었다. 고공에 올라간 박정혜 수석부지회장과 아래에서 이를 지키고 싸우고 있는 이지영 사무장, KEC 김진아 지회장을 인터뷰해서 글로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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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진아씨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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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옵티칼투쟁문화제에서 발언하는 김진아 kec 지회장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 정문에서 하는 집회에서 김진아 KEC 지회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
ⓒ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
2024년 1월 8일 오전 6시 40분경, 박정혜 수석부지회장과 소현숙 조직2부장이 고공에 올랐다. 고용승계를 향한 절박함이 두 사람을 움직였다. 진아씨는 소식을 듣고 순간적으로 멍해졌다. '고공? 정혜가?' 바로 옵티칼로 달려갔다. 이미 두 사람은 고공에 올라간 상태였다. 진아씨는 예전에 김진숙 선배가 고공농성 했을 때가 떠올랐다. '선배 대단해요' 한마디 하지 못하고 위로 고개만 치켜들고 있었던 자신이 떠올랐다. 이번에도 그랬다. '정혜야 정말 할 수 있겠어?'라고 한마디만 하면 되는데, 그게 안 나왔다. 한참 전에 여러 투쟁 이야길 하면서 수다를 떤 적이 있다. 그때 정혜가 물어본 적 있다.
"언니는 단식, 삭발, 고공 이런 거 해봤어요?"
"나는 공장 점거를 해봤지. 그런 건 안 해봤어. 그리고 나 고소공포증 있어."
웃으며 장난스럽게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정혜야, 나도 안 해봤는데 너가 하는구나' 애가 탔다. 정혜는 항상 씩씩하고 든든한 동생이었다. 정혜는 분명 잘 버틸 거였다. 하지만 고공농성 투쟁은 어렵고 외로운 싸움이다. 정혜는 이제 투쟁한 지 1년을 조금 넘긴 병아리다. 조금씩 알아가며 걸음마를 떼어가는 아인데. 갑자기 뜀틀을 넘고 있었다. 잘 해낼 거란 믿음과 불안함이 마음속에서 충돌했다.
내가 원래 이런 성격이 아닌데
지난 열흘간 진아씨는 전화기를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잘 있는지 전화 한번 하고 싶었다. 그런데 엄두가 안 났다.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진아씨는 자신이 매번 일을 저지르는 편인데 이번엔 왜 이러는지 이해가 안 갔다. 문자 하나 보내는 게 이렇게 힘들었나 싶었다.
며칠 전 밤, 옵티칼 조합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정혜한테 영상통화가 왔다. 한명 한명 전화기를 건네받으며 인사를 나눴다. 진아씨도 전화기를 받아들었다. 화면을 쳐다보기만 하면 되는데, 고개가 자꾸 아래로 갔다. 정혜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언니는 전화 한번 안 하고..." 정혜가 말했다. 그 말이 마음에 박혔다.
옵티칼에 없을 때도 눈앞에 정혜랑 현숙이가 아른거려 일이 손에 안 잡히고 잠도 안 온다. 옵티칼에 오면 바로 고공 농성장으로 눈이 간다. 옵티칼에서 철야 농성을 하는 날엔 새벽까지 괜히 밖을 서성인다. 고공농성장을 쳐다보면서 운동장만 돈다. 분명 잘할 거고, 이미 잘하고 있는데 마음이 요동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틀 전, 큰마음 먹고 전화기를 들었다. 문자를 보냈다. 연락 안 해서 미안하다고. 지금 정말 잘하고 있다고. 건강해야 한다고. 답장이 금방 왔다. '언니 괜찮아요. 아래 우리 언니, 동생 조합원들 잘 부탁해요' 맞다. 정혜는 그런 애였다. 주변 잘 챙기고 배려심 많고 책임감 강한 애. 마음이 아팠다.
괜찮아 언니 있잖아
정혜는 고공에 올라가기 전에도 자기 힘든 걸 조합원들에게 털어놓지 못했다. 수석이라는 자리 때문에도 그랬고 힘든 걸 말하면 조합원들이 더 힘들어할 거 같다고 했다. 그래서 진아씨말곤 딱히 털어놓을 곳이 없었다. 둘이 얘기를 많이 했다.
"언니, 저 수석 잘할 수 있을까요? 좀 무서워요."
"사람들하고 얘기를 잘해야 하는데 너무 어려워요"
"언니 잘 모르겠어요. 못하겠어요."
그때마다 비슷한 말을 했다. "잘할 수 있어. 언니 있잖아."
정혜를 편하게 해주려고만 한 말은 아니었다. 정혜는 항상 고민하는 성격이었다. 그런 성격이라면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면 정혜는 "언니, 저 잘 참을 수 있어요. 괜찮아요"라고 했다. 안쓰러웠다. 한편으론 예전 생각도 났다. '나도 맨날 언니들 붙들고 어렵다, 못하겠다고 말했었는데. 그러면 언니들이 나 안쓰럽게 봤는데.'
정혜야 고마워
정혜를 생각하면 자꾸 눈물이 난다. 행복하고 건강하게만 살았으면 좋겠는데, 고공에 올라가서 고생하는 게 괜스레 미안하고 울컥한다. 그때마다 눈물을 겨우 참는다. 지금은 울 때가 아니니까. 우는 게 아니라 아래 있는 동생들을 안아주고 보살펴야 하는 때니까. 얼른 같이 잘 싸우고 이겨서 애들 내려오게 해야 할 때니까.
진아씨는 마음이 너무 복잡해서 자신의 마음을 자기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혜한테 하고 싶은 말은 있다. "나도 내 마음을 잘 몰라서 뭐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이렇게 말하면 조금 표현될까? 정혜야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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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지영씨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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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제에서 참여한 이지영 사무장과 박정혜 수석부지회장 문화제 공연을 보고 있는 이지영 사무장(왼)과 박수를 치는 박정혜 수석부지회장(오른) |
ⓒ 한국옵티칼하이테크 |
정혜 언니를 처음 본 건 현장에서였다. 서로 얼굴만 아는 정도였다. 가끔 마주치면 "언니 안녕하세요", "응, 안녕"하고 인사하는 정도였다. 얘기를 딱히 해본 적은 없지만 좀 '센 언니' 이미지가 있었다. 옆 공정의 조장이었는데, 가끔 우리 조 조장이랑 얘기하는 걸 봤다. 그때마다 정혜 언니는 우리 조 조장을 혼내고 있었다. 뭘 잘못했는지 목소리 키우며 말하는 모습에 '저 언니 성격 세네'라고 생각했다. 그뿐이었다. 딱히 별생각은 안 했다.
괜찮아 언니 있잖아
친해진 건 철야 농성을 하면서부터였다. 사는 얘기도 하고 투쟁 얘기도 했다. 그러다가 진짜 친해진 건 둘이 수석과 사무장이 됐을 때다. 임원이 되니, 속 터놓고 얘기할 파트너가 생겨서 좋았다. 일할 때도 리더, 조장을 해본 적이 없어서 누군가를 이끌고 업무 분배하는 게 어려웠다. 그래서 정혜 언니한테 많이 물어보고 배웠다.
"언니 나 좀 힘든 일 있는데..."
"그렇게 힘든 건 언니한테 다 말해. 언니 있잖아"
그렇게 정혜 언니한테 다 말하면 답은 나올 때도 있고 안 나올 때도 있지만, 항상 마음이 가벼워졌다. 언니한테 참 많이 기댔다. 언니는 "나는 지영이가 동생이어도 배울 게 참 많다고 생각해"라며 존중하고 배려해주었다. 그리고 그걸 표현했다. 정혜 언니는 엄마 같고 큰언니 같고 친구 같기도 했다. 말 그대로 '동지'였다.
언니는 낭비하는 걸 싫어하고 부지런했다. 항상 냉장고 정리를 하고 빗자루질을 하고 정리정돈했다. 누군가 자꾸 어지르면 잔소리도 많이 했다. 처음엔 '왜 이렇게까지 하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게 전체를 위한 거였다. 다들 좋은 환경에 있어야 몸도 마음도 좋아지니까. 그래야 투쟁도 더 잘할 수 있으니까. 언니는 책임감이 강했다.
언니 미안해
정혜 언니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 담담하고 씩씩하다. 투쟁을 시작했을 때도, 고공에 올라간 첫날도, 영하 12도 추운 날도, 눈이 꽤 온 날도 계속 괜찮다고만 한다. 언니가 말은 그렇게 해도 얼마나 속이 썩어 문드러졌을지 생각한다. 며칠 전에 전화기를 보니 정혜 언니 부재중 전화가 있었다. 당황해서 얼른 전화 걸었다.
"언니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아니 왜? 그냥 전화하면 안 되나?"
장난으로 한 말이었는데 괜히 미안했다. 고공 시작하고 일주일 정도 매일 다같이 영상통화를 했다. 매번 우리가 고공 농성하는 언니들한테 걸었다. 그런데 한 번은 정혜 언니가 먼저 영상통화를 걸었다.
"언니, 웬일로 먼저 걸었어요?"
"오늘은 왜 안 걸었어?"
기다렸던 거였다. 아래에서 먼저 영상통화 걸길 기다렸는데, 오지 않아서 먼저 건 거였다. 웃으며 장난으로 한 말인데 또 괜히 속상했다. 언니가 좀 더 마음이 힘든 걸 나한테만이라도 티 냈으면 좋겠다.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면 그 또한 속상하겠지만 들어주기라도 하고 싶다.
언니를 생각하면, '나는 저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하는 질문이 따라온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예전에 둘이 얘기 나눴던 게 생각난다. 정혜 언니는 회의 때마다 같은 말을 했다. 이 투쟁이 끝났을 때 후회 남기기 싫다고. 최선을 다해서 싸우고 싶다고. 솔직히 언니가 안쓰럽기도 하다. 언니는 예전에도 투쟁에 자신을 100% 쏟았다. 잘 끝나고 나면 언니가 언니를 위해서 살았으면 좋겠다.
언니 보고싶어
올라간 언니한테 찡찡대면 안 되지만... 언니가 보고 싶다. 며칠 전에 조합원들이 응원 메시지를 현수막 크기 천에 적어서 올렸다. 그때 나영 언니가 '정혜야, 현숙아 보고 싶다'라고 적었다. 그러니까 형주 오빠가 '가까이서'라고 덧붙여 썼다. 건물에 가까이 가면 얼굴도 보이고 말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정말 가까이서 얼굴을 보고 속 터놓고 얘기도 하고 손도 잡아주고 싶다. 언니도 얼마나 힘들까, 얼마나 식구들이 보고 싶을까, 얼마나 씻고 싶을까 생각한다.
혹시라도 고공이 길어질까 두렵다. 그리고 이 상황에 우리가 익숙해질까 두렵다. 고공 전에도 우리는 1년 정도 투쟁을 했다. 물론 가끔 상황이 몰아칠 땐 정신없었지만 투쟁 상황에 익숙해진 건 맞다. 혹여나 언니들이 고공농성을 하는 상황도 익숙해지고 아무렇지 않아질까 두렵다. 우리가 잘해야 언니들이 얼른 내려오는데. 우리가 잘 싸우고 이겨야 하는데.
언니, 내가 잘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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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원정 투쟁에서 발언하는 박정혜수석부지회장 Nitto 본사에 가기 위해 일본으로 원정 투쟁을 간 박정혜 수석부지회장이 거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
ⓒ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
Part 3. 정혜씨의 마음
조합원들한텐 힘든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진아 언니한테 말하면 많이 이해해주고 조언해줬다. 한 번은 언니한테 울면서 말한 적도 있다. 조합원들이 식구 사정 설명하면서 빠지는 게 괜히 미웠다. 다같이 열심히 하면 좋을텐데, 안 되는 거 같았다. 그런데 그보다 더 짜증나는 건 자기 자신이었다.
"언니, 나 지금까지 조합원들한테 집 사정 다 배려한다고 말했는데요. 나 지금 왜 이러지? 나 말로만 배려한 건가?"
"언니도 그 마음 다 안다. 그래서 너 역할이 힘들어. 그래도 어쩌겠니. 잘 보듬으면서 가자."
힘들 때마다 언니가 잡아줬다.
지영아, 나한테 말해
지영이가 사무장을 맡으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지영아 언니 있잖아. 스트레스 받는 거 혼자 삭이지 말고 꼭 언니한테 말해"라고 자주 말했다. 지영이가 힘들 걸 아니까. 혼자 쌓아두지 않았으면 했다.
지영이가 사무장을 맡아줘서 도움이 많이 됐다. 서로 의지를 많이 했다.
지금 필요한 건 미안함이 아니야
어렸을 때 촌에 살았다. 남들보다 어렵게 살았던 시간도 길다. 그래서 위에 있는 건 많이 힘들지 않다. 지금 중요한 건 고공에 빨리 적응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거다. 그리고 아래에서 동지들이 열심히 싸워서 이기는 거다. 외로움이나 힘듦 같은 건 딱히 생각 안 하고 있다. 지금은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을지만 생각한다. 투쟁으로 머리가 꽉 찼다.
그리고 사실 나는 아주 오래 위에 있을 수도 있다. 첫날 올라와서 잘 버티겠다고 마음 잘 잡았다. 며칠 전에 집에도 오래 걸릴 수 있다고 말해놨다. 위에 있으니까 자꾸 조합원들이 미안하다고 한다. 그런데 너무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무 미안해하면, 위도 아래도 마음이 불편하다. 마음이 편해야 투쟁을 잘할 수 있다.
조합원들이 지금의 마음을 잊지 않고, 아프지 않고 잘 싸워서 이기는 날 만나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노동조합은 평일 08시, 16시와 주말 16시에 공장에서 집회를 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연대를 기다립니다.
불탄 공장 지키며 싸우던 이들, 옥상으로 향하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노조, 고용승계 요구하며 투쟁... 고공농성 돌입한 이들과 연대자들의 이야기
[이훈 기자]
경상북도 구미시 4공단엔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이 있다. 20년간 총매출액이 7조 7천억원 가량이며 노동자 최대 인원 약 700명, 1만 2천평 부지에 세워진 큰 공장이다. 2022년 10월 4일, 공장에 불이 났고 회사는 화재보험금으로 1300억을 받았다. 공장을 재건하는 비용의 약 2배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그러나 한 달 후 회사는 청산을 선언하며 노동자 전원에게 희망퇴직서를 내밀었다.
이를 거부한 11명의 노동자가 불탄 공장을 지키며 싸우고 있다. 이들은 평택에 위치한 쌍둥이 회사로 고용승계하길 요구하고 있다. 사측은 노동조합의 요구를 거부하며 청산의 마무리 절차로 불탄 공장을 철거하려 하고 있다.
결국 2024년 1월 8일, 두 여성 조합원이 공장 옥상으로 올라갔다. '고용승계 없이 공장철거 없습니다'라며 고공농성을 시작한 것이다. 수많은 언론이 마이크를 들이밀었고 촬영을 위해 드론도 띄웠다. 언론은 노사 갈등, 투쟁 계획 등에 대해 많이 물었다. 그러나 고공농성자가 아래에 있는 동지들을 생각하는 마음, 아래에서 고공농성자를 향한 애타는 마음을 취재한 곳은 없었다. 특히 옵티칼 노동조합은 KEC 지회와 아사히비정규지회에게 많은 연대를 받고 있었다. 고공에 올라간 박정혜 수석부지회장과 아래에서 이를 지키고 싸우고 있는 이지영 사무장, KEC 김진아 지회장을 인터뷰해서 글로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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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8일 오전 6시 40분경, 박정혜 수석부지회장과 소현숙 조직2부장이 고공에 올랐다. 고용승계를 향한 절박함이 두 사람을 움직였다. 진아씨는 소식을 듣고 순간적으로 멍해졌다. '고공? 정혜가?' 바로 옵티칼로 달려갔다. 이미 두 사람은 고공에 올라간 상태였다. 진아씨는 예전에 김진숙 선배가 고공농성 했을 때가 떠올랐다. '선배 대단해요' 한마디 하지 못하고 위로 고개만 치켜들고 있었던 자신이 떠올랐다. 이번에도 그랬다. '정혜야 정말 할 수 있겠어?'라고 한마디만 하면 되는데, 그게 안 나왔다. 한참 전에 여러 투쟁 이야길 하면서 수다를 떤 적이 있다. 그때 정혜가 물어본 적 있다.
"언니는 단식, 삭발, 고공 이런 거 해봤어요?"
"나는 공장 점거를 해봤지. 그런 건 안 해봤어. 그리고 나 고소공포증 있어."
웃으며 장난스럽게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정혜야, 나도 안 해봤는데 너가 하는구나' 애가 탔다. 정혜는 항상 씩씩하고 든든한 동생이었다. 정혜는 분명 잘 버틸 거였다. 하지만 고공농성 투쟁은 어렵고 외로운 싸움이다. 정혜는 이제 투쟁한 지 1년을 조금 넘긴 병아리다. 조금씩 알아가며 걸음마를 떼어가는 아인데. 갑자기 뜀틀을 넘고 있었다. 잘 해낼 거란 믿음과 불안함이 마음속에서 충돌했다.
내가 원래 이런 성격이 아닌데
지난 열흘간 진아씨는 전화기를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잘 있는지 전화 한번 하고 싶었다. 그런데 엄두가 안 났다.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진아씨는 자신이 매번 일을 저지르는 편인데 이번엔 왜 이러는지 이해가 안 갔다. 문자 하나 보내는 게 이렇게 힘들었나 싶었다.
며칠 전 밤, 옵티칼 조합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정혜한테 영상통화가 왔다. 한명 한명 전화기를 건네받으며 인사를 나눴다. 진아씨도 전화기를 받아들었다. 화면을 쳐다보기만 하면 되는데, 고개가 자꾸 아래로 갔다. 정혜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언니는 전화 한번 안 하고..." 정혜가 말했다. 그 말이 마음에 박혔다.
옵티칼에 없을 때도 눈앞에 정혜랑 현숙이가 아른거려 일이 손에 안 잡히고 잠도 안 온다. 옵티칼에 오면 바로 고공 농성장으로 눈이 간다. 옵티칼에서 철야 농성을 하는 날엔 새벽까지 괜히 밖을 서성인다. 고공농성장을 쳐다보면서 운동장만 돈다. 분명 잘할 거고, 이미 잘하고 있는데 마음이 요동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틀 전, 큰마음 먹고 전화기를 들었다. 문자를 보냈다. 연락 안 해서 미안하다고. 지금 정말 잘하고 있다고. 건강해야 한다고. 답장이 금방 왔다. '언니 괜찮아요. 아래 우리 언니, 동생 조합원들 잘 부탁해요' 맞다. 정혜는 그런 애였다. 주변 잘 챙기고 배려심 많고 책임감 강한 애. 마음이 아팠다.
괜찮아 언니 있잖아
정혜는 고공에 올라가기 전에도 자기 힘든 걸 조합원들에게 털어놓지 못했다. 수석이라는 자리 때문에도 그랬고 힘든 걸 말하면 조합원들이 더 힘들어할 거 같다고 했다. 그래서 진아씨말곤 딱히 털어놓을 곳이 없었다. 둘이 얘기를 많이 했다.
"언니, 저 수석 잘할 수 있을까요? 좀 무서워요."
"사람들하고 얘기를 잘해야 하는데 너무 어려워요"
"언니 잘 모르겠어요. 못하겠어요."
그때마다 비슷한 말을 했다. "잘할 수 있어. 언니 있잖아."
정혜를 편하게 해주려고만 한 말은 아니었다. 정혜는 항상 고민하는 성격이었다. 그런 성격이라면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면 정혜는 "언니, 저 잘 참을 수 있어요. 괜찮아요"라고 했다. 안쓰러웠다. 한편으론 예전 생각도 났다. '나도 맨날 언니들 붙들고 어렵다, 못하겠다고 말했었는데. 그러면 언니들이 나 안쓰럽게 봤는데.'
정혜야 고마워
정혜를 생각하면 자꾸 눈물이 난다. 행복하고 건강하게만 살았으면 좋겠는데, 고공에 올라가서 고생하는 게 괜스레 미안하고 울컥한다. 그때마다 눈물을 겨우 참는다. 지금은 울 때가 아니니까. 우는 게 아니라 아래 있는 동생들을 안아주고 보살펴야 하는 때니까. 얼른 같이 잘 싸우고 이겨서 애들 내려오게 해야 할 때니까.
진아씨는 마음이 너무 복잡해서 자신의 마음을 자기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혜한테 하고 싶은 말은 있다. "나도 내 마음을 잘 몰라서 뭐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이렇게 말하면 조금 표현될까? 정혜야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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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언니 있잖아
친해진 건 철야 농성을 하면서부터였다. 사는 얘기도 하고 투쟁 얘기도 했다. 그러다가 진짜 친해진 건 둘이 수석과 사무장이 됐을 때다. 임원이 되니, 속 터놓고 얘기할 파트너가 생겨서 좋았다. 일할 때도 리더, 조장을 해본 적이 없어서 누군가를 이끌고 업무 분배하는 게 어려웠다. 그래서 정혜 언니한테 많이 물어보고 배웠다.
"언니 나 좀 힘든 일 있는데..."
"그렇게 힘든 건 언니한테 다 말해. 언니 있잖아"
그렇게 정혜 언니한테 다 말하면 답은 나올 때도 있고 안 나올 때도 있지만, 항상 마음이 가벼워졌다. 언니한테 참 많이 기댔다. 언니는 "나는 지영이가 동생이어도 배울 게 참 많다고 생각해"라며 존중하고 배려해주었다. 그리고 그걸 표현했다. 정혜 언니는 엄마 같고 큰언니 같고 친구 같기도 했다. 말 그대로 '동지'였다.
언니는 낭비하는 걸 싫어하고 부지런했다. 항상 냉장고 정리를 하고 빗자루질을 하고 정리정돈했다. 누군가 자꾸 어지르면 잔소리도 많이 했다. 처음엔 '왜 이렇게까지 하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게 전체를 위한 거였다. 다들 좋은 환경에 있어야 몸도 마음도 좋아지니까. 그래야 투쟁도 더 잘할 수 있으니까. 언니는 책임감이 강했다.
언니 미안해
정혜 언니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 담담하고 씩씩하다. 투쟁을 시작했을 때도, 고공에 올라간 첫날도, 영하 12도 추운 날도, 눈이 꽤 온 날도 계속 괜찮다고만 한다. 언니가 말은 그렇게 해도 얼마나 속이 썩어 문드러졌을지 생각한다. 며칠 전에 전화기를 보니 정혜 언니 부재중 전화가 있었다. 당황해서 얼른 전화 걸었다.
"언니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아니 왜? 그냥 전화하면 안 되나?"
장난으로 한 말이었는데 괜히 미안했다. 고공 시작하고 일주일 정도 매일 다같이 영상통화를 했다. 매번 우리가 고공 농성하는 언니들한테 걸었다. 그런데 한 번은 정혜 언니가 먼저 영상통화를 걸었다.
"언니, 웬일로 먼저 걸었어요?"
"오늘은 왜 안 걸었어?"
기다렸던 거였다. 아래에서 먼저 영상통화 걸길 기다렸는데, 오지 않아서 먼저 건 거였다. 웃으며 장난으로 한 말인데 또 괜히 속상했다. 언니가 좀 더 마음이 힘든 걸 나한테만이라도 티 냈으면 좋겠다.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면 그 또한 속상하겠지만 들어주기라도 하고 싶다.
언니를 생각하면, '나는 저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하는 질문이 따라온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예전에 둘이 얘기 나눴던 게 생각난다. 정혜 언니는 회의 때마다 같은 말을 했다. 이 투쟁이 끝났을 때 후회 남기기 싫다고. 최선을 다해서 싸우고 싶다고. 솔직히 언니가 안쓰럽기도 하다. 언니는 예전에도 투쟁에 자신을 100% 쏟았다. 잘 끝나고 나면 언니가 언니를 위해서 살았으면 좋겠다.
언니 보고싶어
올라간 언니한테 찡찡대면 안 되지만... 언니가 보고 싶다. 며칠 전에 조합원들이 응원 메시지를 현수막 크기 천에 적어서 올렸다. 그때 나영 언니가 '정혜야, 현숙아 보고 싶다'라고 적었다. 그러니까 형주 오빠가 '가까이서'라고 덧붙여 썼다. 건물에 가까이 가면 얼굴도 보이고 말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정말 가까이서 얼굴을 보고 속 터놓고 얘기도 하고 손도 잡아주고 싶다. 언니도 얼마나 힘들까, 얼마나 식구들이 보고 싶을까, 얼마나 씻고 싶을까 생각한다.
혹시라도 고공이 길어질까 두렵다. 그리고 이 상황에 우리가 익숙해질까 두렵다. 고공 전에도 우리는 1년 정도 투쟁을 했다. 물론 가끔 상황이 몰아칠 땐 정신없었지만 투쟁 상황에 익숙해진 건 맞다. 혹여나 언니들이 고공농성을 하는 상황도 익숙해지고 아무렇지 않아질까 두렵다. 우리가 잘해야 언니들이 얼른 내려오는데. 우리가 잘 싸우고 이겨야 하는데.
언니, 내가 잘할 수 있을까.
Part 3. 정혜씨의 마음
조합원들한텐 힘든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진아 언니한테 말하면 많이 이해해주고 조언해줬다. 한 번은 언니한테 울면서 말한 적도 있다. 조합원들이 식구 사정 설명하면서 빠지는 게 괜히 미웠다. 다같이 열심히 하면 좋을텐데, 안 되는 거 같았다. 그런데 그보다 더 짜증나는 건 자기 자신이었다.
"언니, 나 지금까지 조합원들한테 집 사정 다 배려한다고 말했는데요. 나 지금 왜 이러지? 나 말로만 배려한 건가?"
"언니도 그 마음 다 안다. 그래서 너 역할이 힘들어. 그래도 어쩌겠니. 잘 보듬으면서 가자."
힘들 때마다 언니가 잡아줬다.
지영아, 나한테 말해
지영이가 사무장을 맡으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지영아 언니 있잖아. 스트레스 받는 거 혼자 삭이지 말고 꼭 언니한테 말해"라고 자주 말했다. 지영이가 힘들 걸 아니까. 혼자 쌓아두지 않았으면 했다.
지영이가 사무장을 맡아줘서 도움이 많이 됐다. 서로 의지를 많이 했다.
지금 필요한 건 미안함이 아니야
어렸을 때 촌에 살았다. 남들보다 어렵게 살았던 시간도 길다. 그래서 위에 있는 건 많이 힘들지 않다. 지금 중요한 건 고공에 빨리 적응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거다. 그리고 아래에서 동지들이 열심히 싸워서 이기는 거다. 외로움이나 힘듦 같은 건 딱히 생각 안 하고 있다. 지금은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을지만 생각한다. 투쟁으로 머리가 꽉 찼다.
그리고 사실 나는 아주 오래 위에 있을 수도 있다. 첫날 올라와서 잘 버티겠다고 마음 잘 잡았다. 며칠 전에 집에도 오래 걸릴 수 있다고 말해놨다. 위에 있으니까 자꾸 조합원들이 미안하다고 한다. 그런데 너무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무 미안해하면, 위도 아래도 마음이 불편하다. 마음이 편해야 투쟁을 잘할 수 있다.
조합원들이 지금의 마음을 잊지 않고, 아프지 않고 잘 싸워서 이기는 날 만나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노동조합은 평일 08시, 16시와 주말 16시에 공장에서 집회를 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연대를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