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삼성중공업을 불공정거래행위로 신고한 서세원(66) 태원기업 대표가 먼발치에서 삼성중공업 조선소를 바라보고 있다. <이재 기자>
서세원(66)씨가 삼성중공업을 퇴사해 삼성중공업 사내하청 업체인 태원기업 대표가 된 건 2008년 3월이다. 1984년 2월부터 24년간 몸담은 삼성중공업을 나오게 된 게 자의는 아니었다. 서 대표는 “등 떠밀려 나왔다”고 말했다. 2008년 그해의 선택으로 이후 16년이 빚으로 얼룩질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매일노동뉴스>는 지난해 4월 삼성중공업을 상대로 불공정거래를 신고한 서 대표를 지난 5일 거제시에서 만났다.
서 대표는 1979년 마산에 조선소를 둔 코리아타코마에 먼저 입사했다. 이후 현대중공업을 거쳐 1984년 2월부터 삼성중공업에서 심출업무 마킹사로 일했다. 주재료인 철판을 재단하기 위해 도면에 따른 마킹을 하는 업무다. 사원으로 입사한 뒤 24년간 일하면서 파트장까지 올랐다. 만족스러운 시기였다. 삼성중공업에 입사하던 해 첫째 아이를 봤고, 2년 뒤 둘째 아이까지 얻었다.
그러다 2008년 사내협력사 대표직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당시에는 사내협력사가 지금처럼 흔하지 않았다. 굳이 구분하자면 서 대표는 현재 구조의 사내협력사 1세대인 셈이다. 2008~2010년 집중적으로 만들어진 사내협력사는 삼성중공업 기준 167곳에 달했던 때도 있다. 2024년 현재는 80곳 남짓으로 반 토막 났다.
“원하지 않았어요.” 서세원 대표는 그러나 썩 내키지 않았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소수였던 사내협력사도 이미 망해서 나갔다는 소문이 횡행했다. 게다가 서 대표가 첫 순위도 아니었다. 그는 “원래 사내협력사 대표를 맡기로 한 인사가 심사 과정에서 결격사유가 나와 탈락했다”며 “당시 삼성중공업 전무가 차순위로 나를 택해 설득했다”고 말했다. 20일을 도망다녔지만 3월 어느 저녁 술자리에서 결국 수락했다. 도와준다는 약속도 지원의 확약도 없었지만 더는 거절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술값도 내가 냈어요.” 등 떠밀린 대표직이었지만 잘해 보자는 다짐도 그날 저녁에 했다.
등 떠밀린 창업, 지역금융권은 덜컥 빚을 내줬다
사내협력사는 이미 설비와 법인사무실까지 모두 구비돼 있었다. 조선소 도크에 현장사무소로 쓸 컨테이너를 들이고, 사무용 PC 같은 집기 몇 개만 구하면 됐다. ‘꼴’은 그랬다.
인력수급은 만만치 않았다. 당시 평균 인건비를 주고 사람을 쓰려 했지만 모집이 되지 않았다. 당장 도급받은 공사를 진행해야 할 인력이 필요해 결국 평균보다 높은 값에 인력을 모았다. 서 대표는 “사내협력사가 최소한 1년은 헤맨다는 속설이 있다”고 말했다. 그 1년을 버티게 하는 건 빚이다. 삼성중공업 사내협력사라고 하면 거제시 보증을 받을 수 있었다. 시중은행은 덜컥 돈을 빌려준다. 삼성중공업을 믿고 빌려주는 일종의 창업지원금이다. 2억5천만원이 시의 보증을 받고 나왔다. 기술보증기금 대출도 2억원을 받았다. 이 돈은 대부분 인건비로 쓰였고 초기 사업자금으로 갈렸다. 2008년 12월 기준 인력은 본공 70명 정도였다고 한다. 본공은 사내협력사에 채용된 정직원이다. 지금과는 사정이 달라 배 공사를 재도급하는 물량팀이라는 개념이 거의 없었던 때다.
인력이 200명을 넘긴 것은 조선산업의 변화와 관련이 깊다. 2011년부터 바람이 분 특수선 수주와 이후 시작된 해양플랜트 사업의 영향이다. “150여명을 오가다가 2011년 즈음부터 200명을 넘겼는데 당시 특수선 물량이 늘어나면서 예산이 높게 책정됐다고 삼성중공업이 이야기해 모집을 더 했어요. 그리고 해양플랜트 사업도 시작되면서 수요가 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유일한 ‘화양연화’다.
원청 맘대로 대금 산출 “월에 억을 빚져”
그러나 매출이 커지는 와중에도 빚은 차곡차곡 쌓였다. 서 대표는 “월에 억을 빚진다”고 말했다. 하도급대금만으로 인건비를 치르기 어려웠다. 2008년부터 싹을 틔운 빚은 조선업이 불황에 빠져든 2016년 이미 20억원가량으로 만개했다. 창업 과정에서 생긴 빚에 사업용 개인부채 1억원과 주택담보대출 3억원, 거기에 이미 사채까지 5억원이 똬리를 틀었다. 여기에 빚은 아니지만 24년간 일하며 쟁여 뒀던 퇴직금도 들어갔다.
경영이 방만했을까. 단언키엔 조선산업 특유의 하도급대금 지급 관행을 빼놓고 빚을 말하기 어렵다. 하도급대금은 공수와 단가를 곱해 산정한다. 공수란 작업에 필요한 노동시간이다. 용접 1미터당 1시간이 걸린다면, 500미터 용접시 500공수가 필요하다. 이 공수에 표준단가를 곱하면 하도급대금이 산출된다. 언뜻 단순하다.
그런데 공수를 측정할 때 원단위라는 새로운 개념이 등장한다. 공사 발주자가 산정한 단위 작업량 소요 표준시간이다. 작업환경이나 노동자의 숙련도 등을 따져 발주자가 원하는 표준시간이 산정된다.
이쯤 되면 짐작되는 바가 있다. 용접 1미터당 1시간이 걸린다는 생각은 이론에 불과하다. 실제 공수는 발주자가 산정한 단위 작업량 소요 표준시간, 즉 원단위에 따라 결정된다. 만약 원단위에 따른 작업이 이뤄지지 못했다면 그만큼 ‘능률’이 낮았다고 봐 공수가 깎인다. 능률이 50%라면 500미터 용접에 500시간을 썼는데 250시간만 인정되는 셈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하도급대금은 정확히 반 토막이 난다.
이는 사내협력사와 조선소 원청 간 도급계약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다. 사내협력사가 근로계약을 통해 고용한 노동자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 결국 500시간 공수를 기대하고 인원을 뽑았는데 능률이 절반만 인정된다면 이들에 줘야 할 임금이 줄줄이 체불된다. 이 과정을 8년 정도 지속하면 빚더미 20억원 위에 나앉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구조가 그렇다. 서세원 대표는 “삼성중공업은 사내협력사 주머니를 뒤져 배를 만들었다”고 토로했다.
▲ 경남 거제 삼성중공업 전경 <이재 기자>
4대 보험 유예·고용위기업종 지정으로 나락
불행은 하나만 찾아오지 않았다. 수주절벽이 이어지면서 정부가 발표한 지원책은 오히려 사내하청사에 독이 됐다고 한다. 4대 보험 유예조치다.
서 대표는 “4대 보험을 유예하자 원청이 하도급대금에서 4대 보험료를 떼서 줬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이 주장밖에 될 수 없는 이유는 하도급대금에 명세서가 딸려 있지 않아서다. 그는 “규모를 보면 딱 4대 보험을 지급할 만큼만 줄었다”고 거듭 강조했다. 당시 사내협력사의 대응은 갈렸다. 일부 사내협력사는 4대 보험료는 납부하되 임금을 밀렸다. 또 다른 사내협력사는 임금은 주되 4대 보험료는 유예했다. 태원기업은 후자였다. 이 당시 엇갈린 선택은 지금까지 조선업종 4대 보험 유예 문제를 풀지 못하는 단초가 됐다.
고용위기업종 지정은 사내협력사의 자금줄을 옥좼다. 빚을 퍼 주던 금융권이 돌연 걸쇠를 걸었다. 그러면서 자금 상환을 독촉했다고 한다. 고용위기업종 지정은 마치 낙인과 같았다. 빚을 내지 못하니 원청에 하도급대금을 ‘가불’하는 관행이 생겼다.
이 당시 고정비 다이어트를 요구받으면서 서 대표는 본공 300명을 3개 물량팀으로 쪼갰다. 물량팀의 인건비는 본공을 넘어서고 있었지만 당장 고정비 지출을 줄일 수 있으니 불가피했다. 밀린 임금도 주려면 다시 반 토막 난 능률을 감수한 채 배를 만들어야 했고, 그러려면 물량팀을 고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사를 마치면 또 다시 줄 임금이 모자란 상황이 반복됐다. 정말 끝없이 되풀이됐다. 그래서 공정거래위원회를 두드렸다.
불공정 서운함이 불법에 대한 분노로 전이
“처음엔 신고 생각까지는 없었어요.” 서 대표는 그저 답답함을 하소연하고 싶었다고 한다. 지난해 초 지인으로부터 변호사를 소개받았다. 회사 운영이 어렵고 삼성중공업에 섭섭함이 커 상담만 받자고 생각했다. 그러나 면담 과정에서 서 대표도, 변호사도 놀랐다. 하도급대금 지급 관행을 비롯해 다양한 대목에서 삼성중공업과 태원기업의 계약, 아니 조선소 원청과 사내협력사의 거래 관행이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하도급법) 위반 소지가 컸기 때문이다. 그저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것과 불법임을 인지한 것은 차원이 달랐다. 함께 면담한 그의 맏이는 “침착함을 유지하기 어려웠고 분노가 컸다”고 말했다. 그래서 지난해 4월14일 공정거래위에 신고했고, 그 뒤 거래가 끊겨 현재 휴업 상태다. 서 대표는 삼성중공업이 신고사실을 인지한 뒤 보복행위를 했다고 본다.<본지 5월31일자 “‘하도급대금 후려치기’ 신고하자, 삼성중 하청업체 팔다리 잘렸다” 기사 참조>
‘삼성중공업맨’으로 24년간 쌓은 인맥도, 2008년 3월 이후 친목을 다지던 사내협력사들도 모두 등을 돌렸다. 주택도 이미 2차 경매가 진행 중이다. 서 대표는 “이제 언제 원룸으로 옮겨야 할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조선소 원청, 사내협력사 주머니 뒤져 배 만든다”
삼성중공업, 사무실까지 차리고 “하청 대표하라” 종용 … 불공정한 산정기준에 하도급대금 쭉쭉 깎여
▲ 지난해 삼성중공업을 불공정거래행위로 신고한 서세원(66) 태원기업 대표가 먼발치에서 삼성중공업 조선소를 바라보고 있다. <이재 기자>서세원(66)씨가 삼성중공업을 퇴사해 삼성중공업 사내하청 업체인 태원기업 대표가 된 건 2008년 3월이다. 1984년 2월부터 24년간 몸담은 삼성중공업을 나오게 된 게 자의는 아니었다. 서 대표는 “등 떠밀려 나왔다”고 말했다. 2008년 그해의 선택으로 이후 16년이 빚으로 얼룩질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매일노동뉴스>는 지난해 4월 삼성중공업을 상대로 불공정거래를 신고한 서 대표를 지난 5일 거제시에서 만났다.
서 대표는 1979년 마산에 조선소를 둔 코리아타코마에 먼저 입사했다. 이후 현대중공업을 거쳐 1984년 2월부터 삼성중공업에서 심출업무 마킹사로 일했다. 주재료인 철판을 재단하기 위해 도면에 따른 마킹을 하는 업무다. 사원으로 입사한 뒤 24년간 일하면서 파트장까지 올랐다. 만족스러운 시기였다. 삼성중공업에 입사하던 해 첫째 아이를 봤고, 2년 뒤 둘째 아이까지 얻었다.
그러다 2008년 사내협력사 대표직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당시에는 사내협력사가 지금처럼 흔하지 않았다. 굳이 구분하자면 서 대표는 현재 구조의 사내협력사 1세대인 셈이다. 2008~2010년 집중적으로 만들어진 사내협력사는 삼성중공업 기준 167곳에 달했던 때도 있다. 2024년 현재는 80곳 남짓으로 반 토막 났다.
“원하지 않았어요.” 서세원 대표는 그러나 썩 내키지 않았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소수였던 사내협력사도 이미 망해서 나갔다는 소문이 횡행했다. 게다가 서 대표가 첫 순위도 아니었다. 그는 “원래 사내협력사 대표를 맡기로 한 인사가 심사 과정에서 결격사유가 나와 탈락했다”며 “당시 삼성중공업 전무가 차순위로 나를 택해 설득했다”고 말했다. 20일을 도망다녔지만 3월 어느 저녁 술자리에서 결국 수락했다. 도와준다는 약속도 지원의 확약도 없었지만 더는 거절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술값도 내가 냈어요.” 등 떠밀린 대표직이었지만 잘해 보자는 다짐도 그날 저녁에 했다.
등 떠밀린 창업, 지역금융권은 덜컥 빚을 내줬다
사내협력사는 이미 설비와 법인사무실까지 모두 구비돼 있었다. 조선소 도크에 현장사무소로 쓸 컨테이너를 들이고, 사무용 PC 같은 집기 몇 개만 구하면 됐다. ‘꼴’은 그랬다.
인력수급은 만만치 않았다. 당시 평균 인건비를 주고 사람을 쓰려 했지만 모집이 되지 않았다. 당장 도급받은 공사를 진행해야 할 인력이 필요해 결국 평균보다 높은 값에 인력을 모았다. 서 대표는 “사내협력사가 최소한 1년은 헤맨다는 속설이 있다”고 말했다. 그 1년을 버티게 하는 건 빚이다. 삼성중공업 사내협력사라고 하면 거제시 보증을 받을 수 있었다. 시중은행은 덜컥 돈을 빌려준다. 삼성중공업을 믿고 빌려주는 일종의 창업지원금이다. 2억5천만원이 시의 보증을 받고 나왔다. 기술보증기금 대출도 2억원을 받았다. 이 돈은 대부분 인건비로 쓰였고 초기 사업자금으로 갈렸다. 2008년 12월 기준 인력은 본공 70명 정도였다고 한다. 본공은 사내협력사에 채용된 정직원이다. 지금과는 사정이 달라 배 공사를 재도급하는 물량팀이라는 개념이 거의 없었던 때다.
인력이 200명을 넘긴 것은 조선산업의 변화와 관련이 깊다. 2011년부터 바람이 분 특수선 수주와 이후 시작된 해양플랜트 사업의 영향이다. “150여명을 오가다가 2011년 즈음부터 200명을 넘겼는데 당시 특수선 물량이 늘어나면서 예산이 높게 책정됐다고 삼성중공업이 이야기해 모집을 더 했어요. 그리고 해양플랜트 사업도 시작되면서 수요가 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유일한 ‘화양연화’다.
원청 맘대로 대금 산출 “월에 억을 빚져”
그러나 매출이 커지는 와중에도 빚은 차곡차곡 쌓였다. 서 대표는 “월에 억을 빚진다”고 말했다. 하도급대금만으로 인건비를 치르기 어려웠다. 2008년부터 싹을 틔운 빚은 조선업이 불황에 빠져든 2016년 이미 20억원가량으로 만개했다. 창업 과정에서 생긴 빚에 사업용 개인부채 1억원과 주택담보대출 3억원, 거기에 이미 사채까지 5억원이 똬리를 틀었다. 여기에 빚은 아니지만 24년간 일하며 쟁여 뒀던 퇴직금도 들어갔다.
경영이 방만했을까. 단언키엔 조선산업 특유의 하도급대금 지급 관행을 빼놓고 빚을 말하기 어렵다. 하도급대금은 공수와 단가를 곱해 산정한다. 공수란 작업에 필요한 노동시간이다. 용접 1미터당 1시간이 걸린다면, 500미터 용접시 500공수가 필요하다. 이 공수에 표준단가를 곱하면 하도급대금이 산출된다. 언뜻 단순하다.
그런데 공수를 측정할 때 원단위라는 새로운 개념이 등장한다. 공사 발주자가 산정한 단위 작업량 소요 표준시간이다. 작업환경이나 노동자의 숙련도 등을 따져 발주자가 원하는 표준시간이 산정된다.
이쯤 되면 짐작되는 바가 있다. 용접 1미터당 1시간이 걸린다는 생각은 이론에 불과하다. 실제 공수는 발주자가 산정한 단위 작업량 소요 표준시간, 즉 원단위에 따라 결정된다. 만약 원단위에 따른 작업이 이뤄지지 못했다면 그만큼 ‘능률’이 낮았다고 봐 공수가 깎인다. 능률이 50%라면 500미터 용접에 500시간을 썼는데 250시간만 인정되는 셈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하도급대금은 정확히 반 토막이 난다.
이는 사내협력사와 조선소 원청 간 도급계약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다. 사내협력사가 근로계약을 통해 고용한 노동자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 결국 500시간 공수를 기대하고 인원을 뽑았는데 능률이 절반만 인정된다면 이들에 줘야 할 임금이 줄줄이 체불된다. 이 과정을 8년 정도 지속하면 빚더미 20억원 위에 나앉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구조가 그렇다. 서세원 대표는 “삼성중공업은 사내협력사 주머니를 뒤져 배를 만들었다”고 토로했다.
▲ 경남 거제 삼성중공업 전경 <이재 기자>4대 보험 유예·고용위기업종 지정으로 나락
불행은 하나만 찾아오지 않았다. 수주절벽이 이어지면서 정부가 발표한 지원책은 오히려 사내하청사에 독이 됐다고 한다. 4대 보험 유예조치다.
서 대표는 “4대 보험을 유예하자 원청이 하도급대금에서 4대 보험료를 떼서 줬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이 주장밖에 될 수 없는 이유는 하도급대금에 명세서가 딸려 있지 않아서다. 그는 “규모를 보면 딱 4대 보험을 지급할 만큼만 줄었다”고 거듭 강조했다. 당시 사내협력사의 대응은 갈렸다. 일부 사내협력사는 4대 보험료는 납부하되 임금을 밀렸다. 또 다른 사내협력사는 임금은 주되 4대 보험료는 유예했다. 태원기업은 후자였다. 이 당시 엇갈린 선택은 지금까지 조선업종 4대 보험 유예 문제를 풀지 못하는 단초가 됐다.
고용위기업종 지정은 사내협력사의 자금줄을 옥좼다. 빚을 퍼 주던 금융권이 돌연 걸쇠를 걸었다. 그러면서 자금 상환을 독촉했다고 한다. 고용위기업종 지정은 마치 낙인과 같았다. 빚을 내지 못하니 원청에 하도급대금을 ‘가불’하는 관행이 생겼다.
이 당시 고정비 다이어트를 요구받으면서 서 대표는 본공 300명을 3개 물량팀으로 쪼갰다. 물량팀의 인건비는 본공을 넘어서고 있었지만 당장 고정비 지출을 줄일 수 있으니 불가피했다. 밀린 임금도 주려면 다시 반 토막 난 능률을 감수한 채 배를 만들어야 했고, 그러려면 물량팀을 고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사를 마치면 또 다시 줄 임금이 모자란 상황이 반복됐다. 정말 끝없이 되풀이됐다. 그래서 공정거래위원회를 두드렸다.
불공정 서운함이 불법에 대한 분노로 전이
“처음엔 신고 생각까지는 없었어요.” 서 대표는 그저 답답함을 하소연하고 싶었다고 한다. 지난해 초 지인으로부터 변호사를 소개받았다. 회사 운영이 어렵고 삼성중공업에 섭섭함이 커 상담만 받자고 생각했다. 그러나 면담 과정에서 서 대표도, 변호사도 놀랐다. 하도급대금 지급 관행을 비롯해 다양한 대목에서 삼성중공업과 태원기업의 계약, 아니 조선소 원청과 사내협력사의 거래 관행이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하도급법) 위반 소지가 컸기 때문이다. 그저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것과 불법임을 인지한 것은 차원이 달랐다. 함께 면담한 그의 맏이는 “침착함을 유지하기 어려웠고 분노가 컸다”고 말했다. 그래서 지난해 4월14일 공정거래위에 신고했고, 그 뒤 거래가 끊겨 현재 휴업 상태다. 서 대표는 삼성중공업이 신고사실을 인지한 뒤 보복행위를 했다고 본다.<본지 5월31일자 “‘하도급대금 후려치기’ 신고하자, 삼성중 하청업체 팔다리 잘렸다” 기사 참조>
‘삼성중공업맨’으로 24년간 쌓은 인맥도, 2008년 3월 이후 친목을 다지던 사내협력사들도 모두 등을 돌렸다. 주택도 이미 2차 경매가 진행 중이다. 서 대표는 “이제 언제 원룸으로 옮겨야 할지 모르겠다”며 웃었다.